이민호 (1900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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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조선총독부 충청북도 충주공립보통학교 부훈도(副訓導)를 지냈으며 [[1922년]] 조선총독부 충청북도 용원공립보통학교 부훈도를 지냈다. 충청북도 경찰부 영동경찰서 경부보(1927년 ~ 1933년)와 충청북도 경찰부 충주경찰서 경부(1934년 ~ 1935년), 충청북도 경찰부 경무과 경부(1936년 ~ 1937년), 충청북도 경찰부 청주경찰서 경부(1938년 ~ 1941년)로 근무했다. 충청북도 경찰부 경무과 경부로 재직 중이던 [[1937년]] [[중일 전쟁]]이 일어나자 일반인에 대한 동원소집 업무와 군수품 공출 업무, 전시 방공에 관한 업무 달성에 주력하는 한편 시국 관련 각종 강연회와 좌담회를 개최하여 국방사상 보급과 일본의 침략 전쟁에 적극 협력했다.
 
[[1940년]] [[4월 29일]] [[중일 전쟁]]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공로(功勞)에 상신되었으며 [[1942년]] [[7월 8일]] 일본 정부로부터 훈8등 서보장을 받았다. 충청북도 경시(1942년 12월 26일 ~ 12월 28일)와 충청북도 청주읍회 의원(1943년 5월)을 역임했으며 광복 이후인 [[1949년]] [[3월 24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기도 했다했으며 그 뒤의 행적은 남아 있지 않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경찰 부문과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4인 명단]]에 포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