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린 밀수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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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5월 24일]] 삼성이 [[울산광역시|경남 울산시]]에 공장을 짓고 있던 한국비료가 [[사카린]] 2259 포대(약 55t)를 건설자재로 꾸며 들여와 판매하려다 들통이 났다. 뒤늦게 이를 적발한 부산세관은 같은해 6월 1059 포대를 압수하고 벌금 2천여만 원을 부과하였다. 삼성은 한국비료 공장을 짓기 위해 일본 [[미쓰이]]사로부터 [[정부]]의 지급보증 아래 [[차관|상업차관]] 4천여만달러까지 들여왔다.<br>
사카린 밀수를 현장지휘했다고 밝힌 [[이맹희]]씨가 1993년 발간한 《회상록 - 묻어둔 이야기》에서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은 [[박정희]] 대통령과 [[이병철]] 회장의 공모 아래 정부기관들이 적극 감싸고 돈 엄청난 규모의 조직적인 밀수였다고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br>
{{인용문2 |[[1965년]] 말에 시작된 한국비료 건설과정에서 일본 미쓰이는 공장건설에 필요한 차관 4200만 달러를 기계류로 대신 공급하며 삼성에 리베이트로 100만 달러를 줬다. 아버지([[이병철]] 회장)는 이 사실을 박 대통령에게 알렸고 박 대통령은 “여러가지를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그 돈을 쓰자”고 했다. 현찰 100만달러를 [[일본]]에서 가져오는 게 쉽지 않았다. 삼성은 공장 건설용 장비를, 청와대는 정치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에 돈을 부풀리기 위해 밀수를 하자는 쪽으로 합의했다. 밀수현장은 내(이맹희 씨)가 지휘했으며 박 정권은 은밀히 도와주기로 했다. 밀수를 하기로 결정하자 정부도 모르게 몇가지 욕심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이 참에 평소 들여오기 힘든 공작기계나 건설용 기계를 갖고 오자는 것이다. 밀수한 주요 품목은 변기, [[냉장고]], [[에어컨]], [[전화기]], 스테인레스 판과 사카린 원료 등이었다<ref>{{뉴스 인용
|출판사=[[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