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적십자 위원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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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 앙리뒤낭 이야기 ===
[[19세기]]까지만 해도 전쟁터에서 부상을 당한 군인은 아무런 치료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죽는,[[인권]]이 무시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군대에는 제대로 된 의무부대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1859년]] 6월 [[스위스]] [[제네바]] 출신 사업가였던 [[앙리 뒤낭]]은 사업차 [[나폴레옹 3세]]를 만나기 위해 [[이탈리아]]를 여행하게 되는데, 이탈리아는 한창 통일 전쟁으로 몸살으로 앓고 있었다. 여행 도중 북이탈리아의 [[솔페리노]] 지역을 지나게 된 앙리 뒤낭은 그곳에서 프로이센군과 오스트리아군 간에 벌어진 참혹한 전투를 목격하게 되며, 그곳에서 특히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부상당한 군인들의 처참한 모습에 경악하게 된다.
=== 구호활동 ===
[[앙리 뒤낭]]은 그곳에서 자신의 여행 목적을 잠시 잊은 채 마을 부녀자들을 모아 부상병들을 위한 구호활동을 펼치게 된다. [[카스틸료네]]라는 마을에 머무르게 된 뒤낭은 마을의 작은 교회에 자리를 잡고 부상병들을 모아 치료를 시작했으며 치료하기에 너무 늦은 부상병들에게는 그들이 가족들에게 마지막 유언이라도 남길 수 있도록 [[편지]]를 대신 써주고 평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위로해주었다. [[앙리 뒤낭]]은 사재를 털어 음식과 의약품을 마련했으며 부상병 치료를 위해 군 책임자를 설득하여 [[군의관]]들을 동원해 줄 것을 부탁했다.
=== 회상 ===
이렇게 며칠을 그곳에서 보내며 구호활동에 힘썼던 앙리 뒤낭은 스위스 제네바로 돌아 온 후에도 이때의 일을 잊을 수 없었으며 이를 그저 개인적 기억으로만 두지 않고 책을 집필하여 여러 사람과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자 했다. 2년여 간의 집필 과정을 거쳐 [[1863년]] 자비로 [[솔페리노의 회상]](Memory of Solferino)을 출간하였다.
=== 인도주의 제안 ===
앙리 뒤낭은 이 책을 통해 자신이 목격한 전쟁의 참혹함을 상세히 묘사하였을 뿐 아니라 이를 조금이라도 완화시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은 2가지 중요한 제안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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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평시 구호기관을 설립하여 전시 부상자들을 구호할 봉사원들을 훈련시키자.<br />
2. 이러한 구호기관과 봉사원들의 안전한 활동을 보장할 수 있는 국제 협약을 만들자.}}
=== 구호위원회 ===
[[앙리 뒤낭]]의 이러한 제안을 [[유럽]]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마침내 제네바 공익 협회는 이 제안을 심각하게 검토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앙리 뒤낭과 제네바의 명망있는 인사 5명 (귀스타브 므와니에, 루이 아피아, 테오도르 모누아, 기욤-앙리 뒤푸르)이 모여 1863년 전시부 상자 구호 위원회(일명 5인 위원회)를 조직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들은 스위스 정부를 설득하여 각국 대표들이 모이는 외교회의를 개최 전시 부상자 구호에 관한 최초의 제네바협약을 체결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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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Міжнародны камітэт Чырвонага Крыжа]]
[[be-x-old:Міжнародны камітэт Чырвонага Крыжа]]
[[bn:International Committee of the Red Cross]]
[[ca:Comitè Internacional de la Creu Roja]]
[[da:Den internationale Røde Kors Komit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