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카 시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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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 스이코 조정 ===
[[538년]]에 [[백제]]의 [[백제 성왕|성왕]]이 석가불상과 경전 등을 일본에 보내 [[불교]]가 공인되고, [[587년]] 천황이 불교에 귀의하여 [[모노노베노 모리야]]와 [[소가노 우마코]]가 대립하게 된다. 후의 [[쇼토쿠 태자]]는 [[소가 씨]] 편에 서서, [[모노노베 씨]]를 멸망시켰다. 모노노베 씨를 멸망시킨 이후 약 반세기 동안 소가 씨는 대신(大臣)이 되어 권력을 잡았다. [[588년]]에는 소가노 우마코가 아스카에 [[아스카사]]를 세우기 시작한다. [[592년]] 소가노 우마코는 [[야마토노아야노 코마]]에게 [[스슌 천황]]을 [[암살]]하게 하고, 여제 [[스이코 천황]]을 옹립한다. 우마야도 황자(쇼토쿠 태자)는 황태자로 세워지고 [[섭정]]이 되었다. 스이코 천황은 소가노 우마코의 협력을 얻어 내외의 새로운 움직임에 대응해서 국정을 이끌어 갔다. <ref>{{서적 인용 | 저자 = 연민수 |제목= 일본역사 |꺾쇠표 = 예 |출판사=보고사 |연도=1998 |쪽=39~40 |id = ISBN 89-86142-81-3 |인용문 = 6세기 말 조정에서는 소가씨(蘇我氏)가 대립하고 있던 모노노베씨(物部氏)를 타도하고 이윽고 스슌(崇峻) 천황마저 살해하였다. 이러한 정세하에서 즉위한 여제 스이코(推古)는 쇼토쿠(聖德) 태자를 섭정으로 하고 소가노 우마코(蘇我馬子)의 협력을 얻어 내외의 새로운 움직임에 대응해서 국정을 이끌어 갔다. }} </ref> 604년에는 [[관위12계]]를 제정하고 쇼토쿠 태자가 [[십칠조헌법]]을 만들어 불교의 번성에 힘을 쏟는 등, 천황중심의 이상적인 국가체제를 세우는 초석을 쌓았다.
 
[[607년]], [[오노노 이모코]]가 [[견수사]]로서 [[수나라|수]]를 방문하여, 수의 황제에게 국서를 전달한다. 유학생, 유학승을 수에 유학시켜서 수의 문화를 크게 받아들여, 국가의 정치・문화의 향상에 노력했다. [[620년]]에는, 쇼토쿠 태자가 소가노 우마코와 함께 [[덴노키]], [[고쿠키]] 등을 편찬했다.소가 가문은 소가노 이나메(蘇我 稲目, ? ~570), [[소가노 우마코|우마코]](馬子), ? ~626), 에미시(蝦夷, ?~645), 이루카(入鹿, ?~645)의 4대에 걸쳐 번성하여 그 세력이 천황을 능가하게 되었다. 622년에 [[쇼토쿠 태자]], 628년에 [[스이코 천황]]이 죽자, 소가노 에미시는 자신이 추대한 [[조메이 천황]](舒明) 덴노(재위 629~641)를 억지로 즉위시킨 후, 병사로 하여금 자신의 저택을 지키게 하고 자기의 묘를 만드는 데 전국의 백성을 사적으로 부리며 그것을 ‘미사사기(陵, 원래 덴노의 묘를 부르는 말)’로 부르게 하는 등 신하로서의 도를 넘는 파행이 눈에 띄었다. <ref>{{서적 인용 |제목= 일본의 이중권력 쇼군과 천황 | 저자= 다카시로 고이치 |꺾쇠표 =예|연도= 2006 |출판사= 살림 |쪽= 14 |id=ISBN 8952205030 |인용문= 소가 가문은 소가노 이나메(蘇我 稲目, ? ~570), 우마코(馬子), ? ~626), 에미시(蝦夷, ?~645), 이루카(入鹿, ?~645)의 4대에 걸쳐 번성하여 그 세력이 덴노를 능가하게 되었다. 622년에 쇼토쿠 태자, 628년에 스이코 덴토가 죽자, 소가노 에미시는 자신이 추대한 조메이(舒明) 덴노(재위 629~641)를 억지로 즉위시킨 후, 병사로 하여금 자신의 저택을 지키게 하고 자기의 묘를 만드는 데 전국의 백성을 사적으로 부리며 그것을 ‘미사사기(陵, 원래 덴노의 묘를 부르는 말)’로 부르게 하는 등 신하로서의 도를 넘는 파행이 눈에 띄었다. }}</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