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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에 극예술연구회 제17회 공연으로 [[레프 톨스토이]] 원작의 《부활》을 연출했는데, 순수극을 추구하는 극연의 창립 정신을 잃고 흥행에 치중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일을 계기로 동아일보 기자직에서 물러나 본격적으로 연극과 영화에 뛰어들었다. 극연이 극연좌로 바뀌고 [[1939년]]에 해산된 뒤로는 주로 악극 연출에 노력을 기울였다. 이 시기에 공연한 작품으로는 가극 《견우직녀》가 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친일 연극인 단체 [[조선연극문화협회]]의 이사를 맡았고, [[1942년]] [[유치진]]이 쓴 친일 희곡인 〈대추나무〉를 연출해 [[조선총독부]]가 후원한 제1회 연극경연대회에 출품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연극/영화
광복 후에도 가극 《원수의 38선》, 《조국》, 《에밀레종》을 공연하고 [[오페라]] 《[[춘희]]》를 연출하기도 했다. [[국립극장]] 극장장, [[국립국악원]] 이사장을 역임하는 등 대한민국 문화계의 요직에서 활동했다. 《[[파우스트]]》를 번역해 1960년대에 국립극장 무대에 올린 공적으로 독일 정부로부터 괴테훈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서라벌예술대학]] 연극과 교수와 [[대한민국예술원]] 종신회원을 지냈다. [[1962년]]에 건국문화훈장, [[1973년]]에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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