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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19로군의 완강한 저항에 막히자, 일본은 [[일본 제국 육군 9사단]]을 주력으로 한 병력을 증파 16척의 수송선에 나누어 15, 16일 상하이 항과 오송부대에 상륙하였다.
 
9사단장 우에다와 19로군 군단장 채정해는 영국이 주선한 중일 양국군 대표 회담을 통해, 입장을 조율하려 하였으나, 일본의 음모에 의한 전쟁이기 때문에 양측의 간극은 좁힐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2월 10일 다시 영군이양군이 충돌하게 된다. 일본은 19로군의 방어를 뚫지 못해서 또 한차례 증원을 본국에 요청하게 되는데, 일본에서는 또 다시 2개의 사단이 증파된다.
 
3월 1일이 되자, 그간 잘 방어를 해 오던 중국군은 갑작스런 철수를 시작하였다. 그 갑작스런 철수의 배경에는 청나라 숙친왕의 딸인 [[금벽휘]]라는 여인의 농간에 놀아났다는 설이 있었다. 금벽휘는 당시 일본군 특무기관의 소좌 다나카에게 포섭되어, 일본군이 또 증파된다는 거짓 정보를 중국군 지휘관들에게 흘려 철수를 유도했다고 한다. (이 여인은 1948년 장제스에 의해 총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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