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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에이]] 원년(1232년), 고호리카와 천황이 양위함에 따라 2세의 나이로 즉위하였다. [[닌지]] 3년(1242년)에 사고로 사망하였다. 기록(《[[햐쿠렌소]]》, 《[[고다이테이오 모노가타리]]》)에 따르면 궁중 사람들에게 장난을 치고자 궁궐 복도에 [[활석]]을 깔았는데, 잘못하여 자신이 넘어져서 그대로 승하했다고 한다. 사후 지금의 [[교토 부]] [[히가시야마 구]]에 위치한 쓰키노와 능({{lang|ja|月輪陵}})에 안장되었다.
 
시조 천황은 황자나 황녀를 두지 못하고 붕어하는 바람에, 모리사다 친왕(고다카쿠라인)의 혈통은 끊어지고 말았다.
 
원래 이 계통은 죠큐 3년(1221년)에 있었던 조큐의 난에서 막부에 패한 고토바 상황의 혈통 이외의 사람에게 황위를 잇게 한다는 가마쿠라 막부의 방침 아래 당시 10세에 불과했던 고호리카와 천황의 즉위에서 시작되었지만, 친아버지 모리사다 친왕이나 천황의 두 친형도 이미 승려로 출가한 뒤였던 데다 즉위 2년 뒤에는 모리사다 친왕마저 죽으면서 나이 어린 천황만이 남겨진 '황통 단절'의 위기에까지 이르렀다. 이 상태는 고호리카와 천황이 시조 천황이 될 황자를 얻으면서 일시적으로 해소되는 듯 보였지만, 황자를 더 두지 못한 채 고호리카와 상황이 23세에 붕어하고 또다시 당시 4세이었던 시조 천황만이 남겨지는 상황이 되었다. 때문에, 구게 사회에는 '황통 단절'의 위구심이 늘 따라다녔고, 구게들 가운데는 시조 천황 생전보다 그 붕어의 꿈을 꾸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시조 천황이 붕어하면서, 가마쿠라 막부는 새로운 천황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구조 미치이에 등의 구교들이 추천하는 준토쿠 천황의 황자 다다나리왕(忠成王, 주쿄 천황의 이복 동생)을 물리치고 싯켄 호조 야스토키는 [[쓰치미카도 천황]]의 황자 구니히토왕(邦仁王, [[고사가 천황]])을 즉위시켰는데, 이때까지의 11일 동안 천황의 자리는 공석이었고 조정 중신들은 이를 크게 한탄했다고 한다. 천황 자리가 비는 공석 사태란 과거 진고게이운 4년([[770년]]) [[쇼토쿠 천황]]이 죽고 [[고닌 천황]]이 즉위하기까지 55일간 천황 자리가 공석이었던 이래 472년만의 일이었던 것이다. 이후 쇼쵸 원년([[1428년]]) [[쇼코 천황]]의 붕어에서 [[고하나조노 천황]]의 즉위 사이에 7일의 공석기간이 생기는 사태가 일어난 것은 이로부터 186년 뒤의 일이다(북조를 제외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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