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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이튿날 발기에 참여한 원로 대신들이 농상공부대신 [[조중응]]의 집에서 비밀 회의를 열었고, [[12월 5일]]에는 약 4천 명이 출석한 국민대연설회라는 집회를 개최하여 임원을 선정했다. 《[[대한매일신보]]》는 국민대연설회 개최 소식을 전하면서 이완용이 일진회의 공격에 맞서 "한국을 영구히 일본에 부속하기로 특별운동"을 벌이는 과정에 있었다고 밝히고, 국민연설회는 일진회가 합방청원서를 제출해 선수를 치자 이완용이 [[이인직]]을 앞세워 조직한 단체라고 보도했다.
 
국민연설회는 일진회의 [[일한합방상주문‎]] 제출로 병합 과정의 주도권 경쟁에서 뒤지게 되자 서둘러 조직된 뒤 독자적인 장서를 작성하였고, 단체 결성 일주일만인 [[12월 10일]]에 내각과 [[통감부]]에 이 장서를 제출했다. 장서 제출 직전에는 일반 회원에게 공포하는 모임을 가지기도 했다. 이 자리에는 회장 민영소와 부회장 [[이재극]], 전 탁지부대신 [[임선준]], 전 학부대신 [[이재곤 (1859년)|이재곤]] 등 거물급 원로들이 참석했다.
 
일진회와의 지나친 경쟁은 물의를 빚기도 했다. 국민연설회가 노동자 수백 명을 모아 일진회 본부를 습격할 계획이라는 풍설이 돌아 경시청에서 [[예종석 (1872년)|예종석]]을 불러 사실 확인을 한 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