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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사부여'''(曷思夫餘)(서기 [[21년]]~[[68년]])는 [[부여]] [[대소왕]]의 막내동생인 [[갈사왕]]이 [[압록곡]] 근처에 세운 나라이다. '''갈사국'''(曷思國)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 따르면, [[고구려]] [[대무신왕]](大武神王) 5년(서기 [[22년]]) 2월에 [[부여]]를 정벌하여 [[대소왕]]을 죽였다. [[대소왕]]의 6형제 중 막내동생은 장차 나라가 망할 것을 알고 따르는 무리 100여 인과 함께 [[압록곡]](鴨淥谷)에 이르렀다. 거기서 [[해두국왕]](海頭國王)이 사냥 나온 것을 보고 드디어 그를 죽이고, 백성을 빼앗아 [[갈사수]](曷思水) 가에 도읍을 정하고 [[갈사부여]]를 세워 왕이 되었다.<ref>[[김부식]] 지음, [[이병도]] 역주, 〈고구려 본기〉 제2, 《[[삼국사기]]》 상, 을유문화사, 2010년, 348쪽.</ref> 이 때가 [[고구려]] [[대무신왕]] 5년(서기 [[22년]]) 4월이었다. [[갈사왕]]은 자신의 손녀를 [[고구려]] [[대무신왕]]의 둘째 부인으로 삼게 하여, [[왕자]] [[호동]]을 낳았다.
갈사부여의 2대왕은 [[갈사왕]]의 아들로 그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다. 갈사부여의 3대왕은 [[갈사왕]]의 손자인 [[도두왕]](都頭王)이다. [[고구려]] [[태조대왕]](太祖大王) 16년(서기 [[68년]])에 [[도두왕]](都頭王)은 나라를 들어 [[고구려]]에 바치고 [[우태]](于台 또는 優台)라는 벼슬을 받았다.<ref>[[김부식]] 지음, [[이병도]] 역주, 〈고구려 본기〉 제3, 《[[삼국사기]]》 상, 을유문화사, 2010년, 361쪽.</ref> 이로써 갈사부여는 멸망하고 [[고구려]]에 흡수되었다.
갈사부여의 위치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갈사왕]]이 [[압록곡]]에 이르러 [[해두국왕]]을 죽였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근거로 하여 현재의 [[압록강]] 일대로 그 위치를 비정하고 있다.
== 바깥 고리 ==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64965 갈사국(葛思國), 《한국민족문화대백과》], 2009년, 한국학중앙연구원
== 주석 ==
<references/>
[[분류:부여]]
[[분류:한국의 옛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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