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양공: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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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태어났는지는 알 수 없으며, [[고려]]의 제25대 [[왕]]인 [[고려 충렬왕|충렬왕]](忠烈王)과 [[정화궁주|정화궁주 왕씨]](貞和宮主 王氏, 정신부주)의 장남이다. 성은 [[왕씨|왕]](王), 이름은 자(滋), [[본관]]은 [[개성 왕씨|개성]]이다.
 
그의 어머니 [[정화궁주]]는 [[고려 신종|신종]]의 증손녀로 왕족인데다가, [[1260년]](원종 원년) [[고려 충렬왕|충렬왕]]과 가장 먼저 혼인하여 태자비에 책봉된 정실 부인이었다<ref>[http://db.history.go.kr/KOREA/result.do?type=search&searchWord=%EC%99%95%EC%9D%B8%EC%9D%98+%EB%94%B8%EC%9D%84+%ED%83%9C%EC%9E%90%EB%B9%84%EB%A1%9C+%EC%82%BC%EB%8B%A4&x=0&y=0 《고려사》권25〈세가〉권25 - 원종 원년 11월 - 왕인의 딸을 태자비로 삼다]</ref>. 그러나 훗날 충렬왕이 [[원나라]] 출신의 [[제국대장공주]]와 혼인하면서 정화궁주는 제2비의 위치로 밀려났고, 강양공 역시 적장자의 자리를 제국대장공주의 아들 [[고려 충선왕|충선왕]]에게 양보해야 했다. 원래대로라면 강양공이 태자로 책봉되고 왕위를 물려받았어야 하지만, 훗날 왕위에 오른 것은 충선왕이었다<ref>[http://people.aks.ac.kr/front/tabCon/ppl/pplView.aks?pplId=PPL_5COc_A9999_1_0000134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 〈강양공〉]</ref>.
 
=== 왕자 시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