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두 판 사이의 차이

[[1902년]] [[9월 28일]] 제임스 웨스트가 감독직을 사임한 이후 어니스트 만그날이 사무장으로 임명되었고 1부 리그로 팀을 승격시킬 임무를 맡게 되었다. 첫 시도는 디비전 2의 5위로 그쳤다. 만그날은 클럽에 새 얼굴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고 해리 모거와 딕 덕워스 존 피켄 등을 영입했고 400파운드를 들여 찰리 로버츠를 데리고 왔다. 결국 2부 리그 1905-06 시즌에서 2위를 차지하여 1부 리그로 마침내 승격하였다. [[1908년]]에는 클럽 역사상 최초로 우승을 차지하였다. 그리고 다음해 [[FA컵 (잉글랜드)|FA컵]]을 최초로 우승하였다. 1910-11 시즌을 우승하였고 그 와중에 [[올드 트래퍼드]]로 홈구장을 이전하였다. 1910년 2월 19일 [[리버풀 FC]]를 상대로 올드 트래퍼드에서의 첫 경기를 치렀다. [[1922년]]에는 2부 리그로 강등되는 일을 겪기도 하였는데 [[1925년]]에 1부 리그에 복귀하였다. 그러나 다시 [[1931년]]에는 강등하는 등 요요 클럽(승격과 강등을 반복하는 팀)으로 불리기도 했다. 1938-39 시즌에서 14위를 차지한 이래로 1부 리그에 안정적으로 머물기 시작했다.
 
=== 버즈비 시대(1945년 ~ 1969년) ===
[[1945년]] [[매트 버즈비]]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그는 등장하면서부터 자신의 선수 선발권 및 선수 이적, 훈련 방법 등에서의 권한을 요구하였다(그가 바로 직전에 머물렀던 리버풀에서는 이런 요구가 묵살되고 해임되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그의 주장에 동의하고 그에게 권한을 맡기었다. 버즈비가 성사시킨 첫 계약은 선수가 아니라 수석 코치 지미 머피였다. 1947, 48, 49년 2위를 차지하고 1948년에는 FA컵을 우승하는 등 상당한 성적을 거두었다. 버즈비는 클럽이 육성하고 있는 유스 팀 선수들에 주목했고 1956년에 팀 평균 나이가 불과 22세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시즌 103골로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다. 어린 선수를 중용하는 정책은 클럽 역사의 전환점을 가져다주었고 이 선수들을 ‘버즈비의 아이들’(Busby Babes)이라고 불렀다.<ref> [http://kr.goal.com/kr/Articolo.aspx?ContenutoId=482366 루니 "언젠가는 맨유 주장되길 바래"], 골닷컴, 2007년 11월 26일. </ref> 버즈비는 버즈비의 아이들과 함께 공격 축구로 맨체스터의 팬층을 확고하게 구축했다.<ref>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802060095 프리미어리그 이야기 - 맨유엔 50년 전 ‘위대한 전설’이 있다], 동아일보, 2008년 2월 6일. </ref>
 
[[파일:Reloj Old Trafford.jpg|right|thumb|240px|뮌헨 비행기 사고를 추모하기 위해 올드 트래퍼드에 걸린 시계.<ref>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tg=news&mod=read&office_id=240&article_id=0000022685 50년전에 멈춰선 시계], 나비뉴스, 2008년 1월 29일. </ref>]]
[[1958년]] [[2월 6일]] [[뮌헨 비행기 참사]]가 발생했다.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유러피언 컵]] 준결승행을 확정하고 귀국하던 선수단을 태운 비행기가 중간지 뮌헨에서 연료 공급을 받고 이륙을 하는 도중 이륙 실패로 공항의 경계벽과 충돌하였다. 이 사고로 선수 8명과 코칭스태프를 포함해 총 15명이 사망하였다. 2번의 이륙 시도가 이미 있었고, 3번째 시도에서 이륙에 필요한 충분한 속력을 내지 못해 이륙에 실패했다. 버즈비 감독도 비행기에 탑승하여 심각한 부상을 입었으나 구조되었다. 7명의 선수는 사고 당시 사망했고, 중상을 입은 선수 한 명은 2주일 후에 병원에서 사망했다.
 
사고 이후 [[유러피언 컵]]을 포기할 것이라는 루머가 나돌았지만, 부상 중인 [[버즈비]]를 대신해 지미 머피가 임시 감독직을 맡고 대회에 계속 참가하였다. 참사에도 불구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FA컵 결승전까지 올랐다. 1960년대 초반을 거치면서 버즈비가 다시 팀을 정비하였고 [[데니스 로]] 등을 영입하고 젊은 선수 육성에 주력했다. 그 결과로 [[조지 베스트]]라는 맨체스터의 영웅을 탄생시켰다.<ref>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tg=news&mod=read&office_id=241&article_id=0000014601 명장과 악동의 미묘한 함수관계 '조지 베스트 증후군'], 일간스포츠, 2007년 6월 9일. </ref> 1963년 FA컵을 들어 올렸으며, 1964년 시즌에는 2위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1965년과 1967년에는 리그 우승을 달성하였으며, 1968년에는 [[벤피카]]를 4:1로 꺾고 드디어 [[유러피언 컵]]을 들어 올렸다.<ref> [http://www.dailian.co.kr/news/n_view.html?id=82433 맨유 성패 가를 ‘트로이카’…시즌 첫 가동], 데일리안, 2007년 9월 19일. </ref> 이는 뮌헨 비행기 사고 10년째가 되는 해였고 잉글랜드 클럽 사상 최초로 해당 대회를 우승하였다. 1960년대의 버즈비 시대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유럽 올해의 선수([[발롱도르]])를 3명이나 배출하는 기록을 올렸다. 1964년에는 [[데니스 로]], 1966년에는 [[보비 찰턴]], 1968년에는 [[조지 베스트]]<ref>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0015832 조지 베스트, "오웬 버린 레알 마드리드 후회할 것"], OSEN, 2005년 9월 1일. </ref>가 수상자였다. 1969년 버즈비는 감독직에서 물러났고 리저브팀 감독이자 전 맨유 선수였던 [[윌프 맥기네스]](Wilf McGuinness)가 감독직에 올랐다.
 
=== 1969년 ~ 198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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