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제 무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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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색'''(蕭賾, [[440년]] ~ [[493년]])은, [[남북조 시대]] [[남제]](南齊)제 2대제2대 황제(재위:[[482년]] ~ [[493년]])이다. 자는 선원(宣遠). 아명은 용아(龍兒). 묘호는 '''세조'''(世祖). 시호는 '''무제'''(武帝)이다. 고제 소도성의 장남이다.
 
== 생애 ==
[[482년]] 고제(高帝) [[소도성]]은 즉위 3년 만에 죽고, 아들 무제(武帝) 소색이 즉위했다. [[소도성]]의 뒤를 계승한 2대 무제는 여러 번 북위을 공격했으나 패배로 끝났다. 2대 무제(武帝)는 아들 경릉왕(竟陵王) 소자량(蕭子良)을 상류로 보내 송나라 효무제이래 실시했던 태사(台使)파견을 중지했다. 태사는 조세대납 지역에 대해 중앙에서 그 감시를 위해 내려보내는 관리였으나 부정부패가 심했고, 명문출신의 지방관과 대립하여 악평이 많았다.
 
무제는 또한 교적관(校籍官)을 시켜 호적을 조사하고 정리하였다. 수년에 걸친 토지 조사 및 호적조사로 부정부패 때문에 토지를 빼앗기고 국경 근처에서 떠돌던 많은 백성들이 호적에 복귀하였다. 무제는 중서사인 채법량, 여문도를 시작으로 한족 문인 출신의 인재를 등용하여 귀족을 제압했다. 이로 인해 귀족의 지지는 잃어버렸으나, 치세 전반에 걸쳐 백성들의 삶은 윤택해지고, 도시가 번영하였다는 평이 전해졌다. 무제의 치세는 영명의 치(永明의 治)라 불렸으나 무제 사후 후계자 쟁탈전이 벌어져 11년간 계속된 뒤 2명의 어린 군주들의 짧은 재위을 거쳐 [[제 명제|명제]]가 즉위했다. 그 사이 북위에게 산동을 포함한 회하 이북을 빼앗기고 말았다.
 
{{전임후임
| 앞이름 = 전 대
| 뒤이름 = 후 대
| 전임자 = [[소도성]]
| 직책 = [[남제]] 황제
| 대수 = 2
| 임기 = [[482년]] ~ [[493년]]
| 후임자= [[울림왕 [[소소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