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카 시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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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Hyakuninisshu 001.jpg|150픽셀|섬네일|왼쪽|[[다이카 개신]]을 주도한 [[덴지 천황]]]]
{{부분 토막글|일본}}
직접 츠쿠시(筑紫)까지 나아가 백제 부흥군 지원을 위한 원병 파병에 힘쓰던 사이메이(齊明) 천황이 재위 7년만인 661년 음력 7월 24일(양력 8월 24일)에 죽은 뒤 나카노오에는 황태자로서 실권을 장악하였으나, 즉위식을 치르지 않고 오랫동안 칭제(稱制)<ref group="주">군주가 사망한 뒤 차기 군주가 될 사람이나 선대 군주의 왕비가 즉위하지 않은 상태로 정무를 맡아보는 것. 섭정과 다른 점은 섭정의 경우는 군주로 불리는 존재가 이미 존재하고 있으나 칭제의 경우는 그 군주가 없는, 칭제를 맡고 있는 본인이 사실상의 군주나 그에 준하는 존재로서 다만 군주로서의 즉위만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ref>의 형식으로 국정을 맡아보면서 백제 부흥운동을 지원하였다.<ref group="주">덧붙여 사이메이 천황이 붕어한(661년) 뒤에 나카노오에는 일단은 즉위하지 않고 칭제의 형식으로 국정을 맡았으므로 달력을 이해하기 어렵지만, 《일본서기》에서는 유년칭원법에 따라 천황의 기년을 표기하고 있기에, 일단은 사이메이 천황 붕어 이듬해(662년)가 덴지 천황의 '원년'에 상당한다.</ref> 그러나 백제에 파병한 구원군은 덴지 2년(663년) 음력 7월 20일(양력 8월 28일)에 백강(白江) 어귀에서 나ㆍ당 연합군에게 처참하게 궤멸되고([[백강구 전투|백강구(白江口) 전투]]) 백제부흥운동은 실패로 돌아갔다. [[나카노오에 황자는황자]]는 신라{{.cw}}당과의 국교를 재개하기 위해 견신라사, 견당사를[[견당사]]를 파견하였다. <ref>{{서적 인용 | 저자 = 연민수 |제목= 일본역사 |꺾쇠표 = 예 |출판사=보고사 |연도=1998 |쪽=46 |id = ISBN 89-86142-81-3 |인용문= 나카노오에 황자는 … 신라{{.cw}}당과의 국교를 재개하기 위해 견신라사, 견당사를 파견하였으며 … }} </ref>
 
=== 텐무・지토 조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