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핀 캠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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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핀 필 캠벨'''(Josephine Eaton Peel Campbell, [[1853년]] [[4월 1일]] ~ [[1920년]] [[11월 12일]])은 [[미국]]의 감리교 지도자이자 교육자, 간호사이며, [[청나라]]와 [[조선]]에 파견된 [[기독교]] [[남감리교회]] 여성 선교사의 한사람이다. [[1897년]] [[10월]] [[조선]]에 도착하여 기독교 선교활동을 하였으며 가난한 여자 어린아이를 데려다가 글을 가르치다가 나중에 학교를 세운다. [[배화학당]]([[배화여자고등학교]], [[배화여자대학]]의 전신)의 창설자이며, 종교교회, 자교교회의 모태가 된 루이스 워커 예배당의 설립자였다.
 
[[1886년]]부터 [[1897년]]까지 [[청나라]]의 [[상해]]와 [[소주]]에서 선교활동을 하였고, [[1897년]]부터 [[1918년]]까지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 [[조선]]의 [[한성부]]에서 선교사업을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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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4월 15일 그는 부활주일에 예배에 반드시 참석하였다. 그리고 1901년 미국에서 루이스 워커(Lousie Walker) 등이 선교 후원으로 보내준 돈으로 배화학당 내에 예배당을 건축·헌당하고, 이를 '루이스 워커 기념 예배당'(Lousie Walker Memorial Chapel)이라 했다. 이곳에서 시작된 예배 모임은 훗날 종교교회<ref>종침교 근처에 설립되었다 하여 종교교회라 하였다.</ref>와 자교교회의 모체가 되었다. 후일 종교교회가 설립되자 [[윤치호]]는 이 교회에 열심히 다니며 장로이자 교회 살림에 헌신하였다.
 
캠벨 선교사는 여성 교육 사업과 병행하여 전도부인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인식하고 전도부인 양성사업도 주력했다. 이 모든 비용은 그녀의 개인 재산, 후원금, 그녀의 활동을 본 캐롤라이나, 텍사스 지역 목사들의 헌금 송금과 진료 물품, 의료기구 지원 등도 추가되었다. 또한 조선인으로는 [[윤치호]]와 [[이상재]]가 기탁금을 기부, 그녀의 활동을 도와주었고 경비원과 통역사와 식모, 차량 등을 마련해주었다. 그녀의 전도 활동, 치료와 진료를 병행한 선교활동으로 신자들의 수는 늘었고, 처음에는 배화학당 학부모들 중심이었으나 학부모 외에도 학생들의 가족, 친척, 이웃, 동리 사람들 등 신자 수가 급격히 증가햇다증가했다. 목회자는 따로 없는 작은 예배당이었고 그녀가 직접 예배당을 관리하였다.
 
그뒤 루이스 워커 예배당의 규모가 확장되면서 정춘추 전도사와 홍다비다 전도부인 중심의 신앙 공동체는 외부로 독립하여 종교교회(宗橋敎會)가 되었다. 종교교회가 설립되자 [[윤치호]]는 매일 출석하며 평신도의 신분으로 이 교회를 적극 지원하였다. 그리고 윤상은 전도사와 루이스 워커 기념예배당 잔류 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자교교회(紫橋敎會)로 발전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