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 (군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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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서울 출신이라는 기록만 있을 뿐 생몰년과 본적지 등 정확한 신상에 대한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1911년]] [[일본]]에 유학하여 [[1913년]] [[육군중앙유년학교]]를 거쳐 [[1915년]] 5월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제27기로 졸업한 뒤 [[1919년]] 4월 [[일본 제국 육군]] 중위로 임관했다. 사관후보생으로 재학 중이던 1913년 5월부터 11월까지 [[일본 제국 육군]] 제10사단 20연대에 처음 배속받은 뒤 [[도쿄]] 헌병사령부에서도 근무했으며 나중에 가마(蒲)라는 성씨를 가진 일본인에게 양자로 입적되었다. [[1925년]] 5월 일본 정부로부터 훈6등 서보장, [[1930년]] 9월 훈5등 서보장을 받은 경력이 있다.
 
[[1934년]] 9월부터 [[1937년]] 7월 전후까지 함경북도 회령군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제19사단 보병 38여단 제75연대 소속으로 복무했고 [[중일 전쟁]] 발발 후 [[조선군사령부]] 보도부의 보도부장에 임명되었다. 보도부장으로서의 역할은 지원병, 징병, 학병 제도 홍보를 통한 [[태평양 전쟁]] 지원과 언론 통제였다. 일본군 현역 장교로 복무 중이던 [[1941년]] 8월 [[조선문인협회]] 평의원을 역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