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븐 알하이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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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하이삼의 원래 관심사는 과학과 기술이 아니었다. 그는 행정가였다. 초기 알하이삼의 관심사는 종교였고, 여러 종교를 연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종교적인 교리들이 서로 상충됨을 알고 나서 종교에서 진리를 찾겠다는 희망을 포기했다. 행정가로서의 알하이삼은 생활 세계를 개선하기 위한 도구 설계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고, 이러한 관심이 결국 다양한 거울 및 렌즈의 연구로 이어졌다.
 
또한 공학자로서도 알하이삼은 명성이 있었다. 그의 업적 중 하나는 [[나일 강]]의 홍수를 조절하기 위해서 현재의 [[아스완 댐]]이 있는 자리에 댐 공사를 계획한 일이다.<ref>Rashed, Roshdi (2002-08-02), "PORTRAITS OF SCIENCE: A Polymath in the 10th Century", Science (Science magazine) 297 (5582): 773, doi:10.1126/science.1074591, ISSN 0036-8075, PMID 12161634, retrieved 2008-09-16</ref> 하지만, 그는 현장 작업을 시작한 후에 그 계획이 현실성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집트]]의 최고 주권자인 [[칼리프]]의 분노와 처벌이 두려워 미친 척을 했다. 결국 그는 1011년부터 칼리프가 죽은 1021년<ref>[http://www.cgie.org.ir/shavad.asp?id=123&avaid=1917 the Great Islamic Encyclopedia]</ref>까지 가택 감금을 당했는데, 이 동안 그는 광학에 대한 책인 ''[[광학의 서]]''를 서술했다. 가택 감금이 끝난 후에도 그는 [[물리학]], [[천문학]], [[수학]]에 관한 연구들을 했고 논문을 썼다. 그는 후에 [[이슬람 스페인]]에 여행을 갔는데, 이 기간 동안 그는 천문학, 수학, 물리학, 의학, 당대 실험 과학 방법에 대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연구를 할 수 있었다.
 
어떤 전기 작가들은 알하이삼이 바스라에서 미친 척하고 지냈을 거라고 말하고, 어떤 이들은 [[시리아]]로 도주해서 [[바그다드]]로 갔을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는 1038년에 이집트에 있었다는 것이다. <ref name="tt">O'Connor, J. J.; Robertson, E. F. (November 1999), Abu Ali al-Hasan ibn al-Haytham, retrieved 2008-09-20</ref>그는 그동안 '[[지혜의 집]]'<ref name="tt"></ref>, 혹은 '다르 알일므({{llang|ar|دار العلم}})'라고 알려진 [[알아즈하르 대학교]]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