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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역사는 [[국제 태권도 연맹]](ITF)와 [[세계 태권도 연맹]](WTF)가 조금씩 다른 견해를 보인다. ITF는 초기 태권도가 가라데의 영향을 받아 민족 고유의 무술로 변화, 발전시킨 것이라고 하는 반면, WTF는 고대시대부터 전해 내려 오는 전통무술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ITF와 WTF 태권도는 기본틀, 동작과 품새에서부터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WTF는 태권도의 뿌리를 한국 고유의 무술 [[택견]]과 수박도에서 근원을 찾고 있다.<ref>[http://wtforg.cafe24.com/wtf_kor/site/about_taekwondo/present_day.html WTF 태권도 역사 - 근현대]</ref> 반면, ITF측에 의하면, 태권도의 창시자는 [[최홍희]]이다.<ref>[http://www.kitf.org/NEW/bbs/board.php?bo_table=webpage&wr_id=93&PG=TAEKWONDO ITF Korea - 태권도의 역사]</ref> 그러나 [[최홍희]]가 태권도의 창시자인지, 아니면 '''태권도'''([[wikt:跆|跆]][[wikt:拳|拳]][[wikt:道|道]])라는 '명칭'만 지은 사람인지 이것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뉜다. 그는 함북[[함경북도]] 화대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아버지는 어린 [[최홍희]]를 택견 고수 한일동에게 보내 한국 전통 무술 [[택견]]을 배우게 했다.<ref>Park, S. H. (1993): About the author. In H. H. Choi: Taekwon-Do: The Korean art of self-defence, 3rd ed. (Vol. 1, pp. 241–274). Mississauga: International Taekwon-Do Federation.</ref> 이후, [[일본중앙대학]]을 다니면서 [[가라데]]도 배운 [[최홍희]]는 군에서 복무하며 군대격투기로 [[공수도]]를 지도하였다. 그는 독자적인 무술을 만들고자, 한국 고유의 무술 택견식 격투기와 가라데의 시스템을 결합하여 발차기가 유연하며 체중 이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무도를 만든다.<ref>{{서적 인용|제목=ITF 태권도 형성과 발달에 관한 연구|출판사=대한무도학회|발행일자=2008년 1월|저자=김산, 김창우, 송일훈|인용문=최홍희의 끊임없는 연구와 개발 속에서 한국의 역사를 담은 천지, 단군, 도산 등 24가지의 틀로서 가라데에서 벗어난 새로운 수련체계를 확립하였다. ITF 태권도는 모든 기술에 적용하는 사인웨이브 이론을 확립하여 독특한 무도로 평가 받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ref>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이 육군의 가라데 시범을 관람한 후 어린시절 본 "택껸과 비슷하다"라고 언급하였고, 당시 육군 장성 [[최홍희]]가 택견을 태권으로 바꾸고, 여기에 도를 합하여 태권도를 탄생시켰다.<ref>심승구(한국체육대학교 한국사 교수), 태권도의 문명사적 의의와 택견의 미래 가치, 문화재사랑 2012년 4월호 14쪽, 문화재청</ref> 1955년 태권도의 명칭 제정은 가라데를 주체적으로 수용한 것이라는 평가가 있다.
 
1945년 일제 해방이후 국내에 여러개의 도장이 생기게 된다. 크게 6개의 도장이 있었는데([[무덕관]], [[청도관]], [[송무관]], [[창무관]], [[윤무관]], [[오도관]]) 이 도장들이 1960년대에 합쳐져서 현대 태권도의 모체가 된다. 여기서 가장 영향력이 큰 도장은 무덕관과 청도관이었다. 청도관은 [[이원국]]씨에 의해 설립됬는데, 그는 어렸을때 서울 안국동에서 [[택견]]을 수련하고, 이후 가라데를 배우고 중국 상하이와 허난에서 쿵푸를 수련했다. 해방 이후, 청도관은 2번째로 큰 도장이 된다. 가장 큰 도장은 무덕관이었다. 무덕관은 황기에 의해서 설립됬는데, 황기는 어릴때 [[택견]]을 배우고, 중국에서 [[태극권]]과 [[쿵푸]]를 배웠다. 덧붙여 그는 철도 회사를 다니면서 도서관에서 [[오키나와]] [[공수도|가라데]] 책을 읽고 가라데의 철학을 읽었다고 한다.(그는 직접적으로 가라데를 배운적이 없다) <ref>황기와 가라데의 관련성은, 어렸을때 도서관에서 가라데책을 읽었다는 것 외에는 없다.<br /> {{웹 인용|인용문=In 1939, he began work for the Cho Sun Railway Bureau. This position allowed him access to a library where he began reading about philosophy and Okinawan Karate.(도서관에서 오키나와 가라데의 철학을 읽었다.)|url=http://worldmoodukkwan.com/index.php?option=com_content&task=view&id=21&Itemid=30 |제목=[[무덕관]]의 역사|언어=en|출판사=[[무덕관]] 공식 홈페이지}}</ref> 1957년, 무덕관 관장 황기는 한국의 고전 무예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서 한국의 전통 무술, '수박'을 발굴한다. 이 무예서로부터 손과 발의 타격 테크닉을 취해서 무덕관 태권도의 기술을 완성시킨다. 1960년대, 대한 수박도 협회는 한국의 전통 무술로 정부로부터 공식 인증을 받는다. 무덕관은 당시 최대의 태권도 도장이었는데, 1953년과 1970년 사이에, 전체 태권도 수련자의 약 75%가 무덕관에서 배웠다. 무덕관이 현대 태권도 형성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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