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삼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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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손량의 치세에 정권을 장악한 [[제갈각]](諸葛恪)은 처음에는 선정을 펼쳐 널리 민심을 얻고, 동흥 전투에서 승전하여 그 명망이 한때 드높았다. 그러나 그로 인해 교만해져 20만 대군을 무리하게 징발하여 합비신성을 공격하였다가 대패하여 민심을 잃었고, 돌아와서는 자기 실패를 가리는 데 급급하고 다시 출정하려 하여 동료들을 두렵게 했다. 마침내 [[손준]](孫峻)이 손량과 공모하여 제갈각을 죽이고, 손준은 실권을 쥐고 제갈각을 능가하는 만행을 벌여 오나라는 더욱 어지러워졌다. 손준이 죽자 그 권세는 손준의 종제 [[손침]](孫綝)에게 넘어갔으나 손침의 정치는 손준과 다를 것이 없었으며, 더욱이 [[제갈탄]](諸葛誕)의 난을 효과적으로 돕기는커녕 오히려 패퇴를 거듭하고 마침내 제갈탄을 지켜내지 못했으므로 원성이 자자했다. [[영안 (오)|영안]](永安) 원년([[258년]]), 손량은 실권을 장악한 손침을 주살하려다가 실패하였다. 손침은 손량을 내쫓고 폐제의 형이며 손권의 여섯째 아들인 [[손휴]](孫休)를 황제로 옹립하니 곧 오 경제(景帝)다. 경제는 손침과 대립하던 끝에, [[장포 (동오)|장포]](張布) · [[정봉 (형)|정봉]](丁奉)과 모의해 그를 체포해 처형한다.
 
경제는 즉위 초기에는 조세를 감면하고, 과거 제도와 유사한 관리 등용 제도를 실시하는 등 오나라를 개혁해 보고자 하였으나 말년에는 측근 장포와 [[복양흥]](濮陽興)에게 정무를 위임했으며, 장포와 복양흥 역시 비교적 악정을 펼쳤으므로 원망이 높았다. [[원흥 (오)|원흥]](元興) 원년([[264년]]), 경제가 죽고 때마침 촉한의 멸망과도 겹쳤기 때문에 이 기회에 훌륭한 황제를 세워 거국일치로 오나라를 융성시키려 했다. 이때 지목된 사람이 바로 앞서 태자에서 폐위된 손화의 아들 손호이다. 그런데 황제가 된 손호는 성질이 포악하고 오만방자해 대사면을 연발하는 한편, 손휴의 아들 [[손완]](孫[[파일:사람 이름 완.png]]) · [[손굉]](孫[[파일:사람 이름 굉.png]]) · [[손망]](孫[[파일:사람 이름 망.png]]) · [[손보 (오)|손보]](孫[[파일:사람 이름 보.png]])를 잡아들여 손완과 손굉을 죽였다. 더구나 연회 자리에서 신하들을 취하게 만들어 허튼 언동을 하는 자는 그 자리에서 죽이고, 안면을 벗겨내거나 눈을 도려내는 잔인한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자행했다. 또 간신 하정 · [[잠혼]](岑昏)을 총애하고, 백성들을 가혹한 노역으로 내몰았기 때문에 민심은 급속도로 나빠져갔다. 280년 진나라가 오나라를 침공하자 손호는 어이없이 그대로 항복하여, 중국대륙은 통일되어 삼국시대가 막을 내리게 된다.
 
== 역대 황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