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흐메트 오르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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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흐메트 오르한은 압둘 카디르 왕자의 두 번째 부인이 낳은 첫째 아들이었다. 그의 아버지 압둘 카디르 왕자는 1876~1909년에 재임한 34대 [[술탄]]인 [[압뒬하미트 2세]]의 두 번째 부인 소생의 아들이었으며, 오스만 제국 육군 총사령관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카디르 왕자는 첫 번째 부인과의 결혼에서는 자식이 없던 상태에서,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은 두 번째 부인에게서 메흐메트 오르한을 얻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두 번째 부인과의 결혼은 왕실로부터 한동안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한편 [[압뒬하미트 2세]]가 [[청년 투르크당]]에 의해 강제 퇴위된 이후, [[술탄]] 지위는 연장자 상속 원칙에 따라 [[압뒬하미트 2세]]의 이복동생인 [[메흐메트 6세]]와 [[메흐메트 7세]]로 계승되었다.
 
[[1922년]] [[11월 1일]]에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에 의해 술탄제가 폐지되었다. 새로 출범한 [[터키]] 공화국은 이어 [[1924년]] [[3월 3일]]에 오스만 가문이 갖고 있던 [[칼리파]] 권한마저 폐지해버렸다. 이로 인해 주요 황족들은 모두 강제 추방 조치가 내려졌으며, 메흐메트 오르한도 가족과 함께 수중에 단 2,000파운드만을 챙긴 채 외국으로 떠났다. 이어 [[1924년]] [[4월 23일]]을 기해 [[터키 대국민의회]]는 [[오스만 제국]]의 주요 인사 150명을 비롯한 황족들을 기피인물로 지정하고 이들의 재입국을 법적으로 봉쇄해버렸다. 새로운 법령에 의해 오스만 가문의 남자 인사들은 50년간, 여자 인사들은 28년간 입국이 불허되었다. 이후 메흐메트 오르한은 한때 [[알바니아]] 국왕 [[조구 1세]]의 후의를 입으며 지내기도 했으나, 결국 브라질에서[[아르헨티나]]에서 조선 노동자 일을, [[베이루트]]와 [[다마스쿠스]]를 오가는 장거리 택시 운전기사 일을 하다가 [[프랑스]]로 넘어가 미군 묘지 안내원을 하는 등 궁벽한 삶을 이어갔다.<ref>{{뉴스 인용
|제목 = Son Osmanlı Mehmet Orhan Efendi
|url = http://www.netpano.com/haber/300/Son/Osmanl%C4%B1/Mehmet/Orhan/Efendi
|출판사 =
|저자 = netpano.com
|쪽 =
|작성일자 = 2005-09-09
|확인일자 =
}}</ref>
 
[[1983년]]에는 33대 [[술탄]] 무라트 5세의 증손자이자 오스만 가문의 41대 수장이던 알리 바십이 사망하면서, 남은 가문 인사 가운데 최연장자로서 가문 수장 직위를 이어받았다. 그는 터키 정부의 입국 금지 조치가 풀린 이후에도 터키 방문을 거부하다가 [[1992년]]에야 잠시 방문하였다. 이후에는 [[프랑스]]의 [[니스]]로 돌아가 단촐한 아파트에서 홀로 여생을 보내다가 [[1994년]] [[3월 12일]]에 84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