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교육: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Gjue (토론 | 기여)
Gjue (토론 | 기여)
31번째 줄:
* 《예기》, 《좌전》(각 경전 별로 3년에 걸쳐 이수)
 
또한 국자감에서는 경전의 학습과 함께 정치적 식견을 진술하는 시무책을 익히게 하였으며, 여가가 있을 경우에는 글씨를 연습시키되 하루에 한 장씩 쓰게 하였고, 《[[국어 (역사서)|국어]]》, 《[[설문해자|설문]]》, 《자림(字林)》<ref>한자를 모아서 부수와 획수에 따라 배열하고 글자 하나하나의 뜻과 음을 풀이한 책.</ref>, 《삼창(三倉)》<ref>중국 한(漢) 나라 때에 편찬되었던 사전으로, 창힐편(蒼頡篇)•원력편(爰歷篇)•박학편(博學篇)의 3편으로 구성되어 있다.</ref>, 《[[이아]]》 등의 서적을 읽게 하였다. 한편, 기능교육분야의 경우엔 율학은 법령, 서학은 팔서, 산학은 산술을 교육하였다.
 
국자감의 교원은 박사와 조교로, 극 직급은 국자박사가 정7품, 태학박사가 종7품, 사문박사가 정8품, 율학박사가 정8품, 서학 및 산학박사가 종9품으로 대체로 낮은 편이었다. 조교의 직급은 분명하지 아니하며 다만 기록에 율학조교가 종9품으로 나타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