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교육"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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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택재에서 양정재까지는 유학 전공반이었고, 강예재는 무술 전공반이었다. 강예재와 같은 무술 전공 과정을 국가의 최고학부에 설치한 것은 한국 역사 상 고려의 국자감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모습이다.
 
한편, 예종 14년(1119)에는 장학재단인 양현고가 설치되었다. 그런데 충렬왕 때에 이르러 양현고의 재원이 고갈되자 안향이 관료들로부터 기금을 모금하여 섬학전을 양현고에 설립하였다. 이 섬학전은 양현고의 재원이 고갈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대부를 해주고 받는 이자로써금리수입으로써 학생의 후생경비를 확보하였다.
 
고려시대의 국자감의 강화는 왕권 강화와도 맞물려 있었을 뿐만 아니라 국격의 상징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고려의 여러 왕들은 국정 쇄신을 위한 노력 중에서 국자감의 정비를 중요한 과제로 여겼다.
 
== 발전 과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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