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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묘'''(何苗, ? ~ [[189년]])는 [[후한]] 말기에 정권을 잡았던 [[하진]](何進)의 동생이다. [[십상시]]에 의해 하진이 죽은 후 자신도 죽임을 당했다.
본성은 주(朱). 아버지의 이름은 불명. 하황후(何皇后)와는 이복남매로, 하진(何進)과는 피가 섞이지 않았다.
[[십상시]]에 의해 하진이 죽은 후 자신도 죽임을 당했다.
 
삼국지 동탁(董卓)전 주석의 『영웅기(英雄記)』 및 『속한서()』 오행지(五行志)에 기록되어 있다.
하묘는 하태후 덕분에 출세한 후 거기장군(車騎將軍)이 되었다. 어머니 무양군(舞陽君: 작위 이름)과 함께 십상시가 바치는 뇌물을 받았는데, 이 때문에 하진이 십상시를 제거하려 하자 누이 하태후에게 간언하여 이를 막게 하였다. 또 하진에게도 십상시를 해치지 말 것을 권하였다.
『영웅기』 및 『속한서』 오행지 이초요(二草妖)의 항에 따르면 하태후의 어머니 무양군(舞陽君)은
주씨와의 사이에 하묘를 낳아, 그 후 하진((何真)의 후처가 되자 하태후를 낳은게 된다.
한편으로 『속한서』 오행지 일옥자괴의 항에서는, 하황후의 어머니가 다른 오빠가 하진,
아버지가 다른 동생이 하묘라고 되어 있으나, 어쨌든 하진과 하묘의 사이에는 직접적인 혈연관계가 없는 것이 된다.
 
이전에는 계형(의형)인 하진과 함께 남양(南陽)에서 도살업을 하고 있었다고 여겨지나,
[[189년]] 8월 하진이 십상시에게 암살당하자, [[원소 (후한)|원소]](袁紹)와 함께 십상시를 공격하여 그 중 하나인 [[조충 (후한)|조충]](趙忠)을 죽였다. 하진의 사병을 거느리던 장수 오광(吳匡)은 평소 십상시를 옹호하던 하묘를 곱게 보지 않았는데, 하진이 죽자 하묘가 암살에 가담한 것으로 여기고 하묘를 죽였다.
이복동생이 영제의 총애를 받고, 황자(皇子)를 낳아 황후가 되자,
이후, 하묘의 무덤은 [[십상시의 난]] 때 하진을 죽게 했다는 이유로 [[동탁]](董卓)에 의해 파헤쳐지는 동시에 시체도 절단당해 길에 버려지는 수모를 겪었다.
계형과 함께 관료가 되어, 하남윤(河南尹)에 임명되었다.
그 후, 차기장군으로 누진해 제양후로 봉해졌다.
 
영제가 붕어해 소제(少帝)가 즉위하자, 환관의 존폐를 둘러싸고, 정치 싸움이 발생했다.
당시, 계형인 하진 등은 환관의 제거를 요구해 동생인 왕태후에게 그 뜻을 주상했으나,
하묘는 이복동생인 황태후와 결탁해서 계형과 대립해,
한왕조의 전통이라고 주장하며 환관을 옹호했다.
 
하묘는 어머니 무양군(舞陽君: 작위 이름)과 함께 십상시가 바치는 뇌물을 받았는데,
이 때문에 하진이 십상시를 제거하려 하자 누이 하태후에게 간언하여 이를 막게 하였다.
또 하진에게도 십상시를 해치지 말 것을 권하였다.
 
[[189년]] 8월 하진이 십상시에게 암살당하자, [[원소 (후한)|원소]](袁紹)와 함께 십상시를 공격하여
그 중 하나인 [[조충 (후한)|조충]](趙忠)을 죽였다.
그러나 하진의 사병을 거느리던 장수 오광(吳匡)은 평소 십상시를 옹호하던 하묘를 곱게 보지 않았는데,
하진이 죽자 하묘가 하진 암살에 가담한 것으로 여기고 동탁의 동생 동민(董旻)과 함께
하묘를 죽였다.
 
이후, 하묘의 무덤은 [[십상시의 난]] 때 하진을 죽게 했다는 이유로상경한 [[동탁]](董卓)에 의해 파헤쳐지는 동시에 시체도 절단당해 길에 버려지는 수모를 겪었다.
 
[[분류:한나라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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