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원 비상 결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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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원 최종권고'''(''senatus consultum ultimum'')
 
이 원로원 최종권고가 가결되면, 의결에 의해서 생성된 권한은 그야말로 초법적인 권한이 되어 이제까지 존재해있던 모든 법을 무시할 수 있고, 모든 권한을 [[집정관]](또는 [[독재관]])에게 양도할 수 있었던 [[로마 원로원]]의 최고 권위의 상징이며 최후의 무기였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원래는 그렇게 막강한 권한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야말로 국가의 원로들의 '권고'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바뀐 것은 한니발에 의한 제 2차 포에니 전쟁을 성공적으로 치러내면서 부터였다. 한니발에 대한 조치는 의례적인 공화정의 의사결정 구조에 의해서는 신속한 대응이 불가능했으므로 원로원에서는 임시변통으로 원로원 최종권고를 사용하여 각종 조치들을 재빠르게 취했고 결국 한니발을 이탈리아 반도에서 몰아낼 수 있었다. 그 후 그 유효성이 입증된 원로원은 최고의 권세를 누리게 되었고 그와 더불어 원로원 최종권고는 그 누구도 의의를 달 수 없는 최고의 권위를 지니게 된 것이다.
 
그 뒤, 원로원 최종권고는 원로원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남발하게 되었는데, 그것의 시초는 기원전 123년과 122년에 [[티베리우스 그라쿠스]]의 친동생인 [[가이우스 그라쿠스]](Gaius Gracchus)를 지목하게 되었다. 그들은 '공화정의 국제를 지키기 위하여' 시민의 권리를 일시 정지 시킨 후 그의 지지자 3,250명 이상을 학살하였다. 이 사건은 원로원 측이 불리하게 될 때에는 군대라도 동원하여 정치·사회문제를 해결할수 있다는 전례에 없었던 무력 폭력의 한 예를 남기게 되었다.
 
기원전 100년, 호민관 [[사투르니누스]](Lucius Appuleius Saturninus)와 [[글라우키아]](Gaius Servilius Glaucia)역시 원로원 최종권고에 의해 제압당하고 말았다.
 
기원전 62년, 원로원 의원이자 급진 개혁파였던 [[카틸리나]](Lucius Sergius Catilina)등에 대해 원로원 최종권고를 발동시켰고, 로마에 상주해있던 법무관이나 현직 원로원 의원 등 5명이 체포되고 처형된 뒤 카틸리나를 3,000명의 추종자와 함께 학살해버렸다.
 
이후, 카이사르 역시 기원전 49년 가장 혐오하는 법인 원로원 최종 권고에 의해서 반역자로 낙인찍히지만, 카이사르는 [[내전]]에서 승리하여, 원로원을 약화시키는데 성공하고 그 뒤, 원로원 최종 권고는 사라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