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판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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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을 계승하여 조조에 대해 대항의사가 없던 유종은 [[부선]](傅巽)의 진언에 따라 조조가 신야에 도달하자 항복했다. 번성(樊城)에 주둔하던 유비는 [[샹양 구 (샹판 시)|양양]](襄陽)으로 향했다. [[제갈량]](諸葛亮)은 유종을 공격하여 형주를 지배하자고 진언했으나, 유비는 유표의 은혜를 생각해 이 제안을 거절했다. 그리고 유비는 유종을 불렀으나 유종은 두려워하며 나가지 않았다.
 
유종의 측근 및 다수의 형주사람들은 유비에게 귀순했다. 많은 백성들이 유비를 따라 움직였기에 유비는 하루 10여리밖에는10여리(4-5km)밖에는 전진하지 못했다. 여기서 유비는 [[관우]](関羽)에게 수백척의 배에 그들의 일부를 탑승시켜 강릉(江陵)으로 보내고 미리 접선준비를 하게 하였다.
 
조조는 유비가 군수물자가 풍부한 강릉을 점거하는걸 두려워해 수송부대를 후방에 배치하고 신속하게 양양을 점거했다. 조조는 [[조순 (후한)|조순]](曹純), [[문빙]](文聘)과 함께 몸소 5천 정예기병대 호표기를 이끌고 급히 유비를 추격하였고, 이들은 당양현 장판에서 유비를 급습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