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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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더 후는 〈[[My Generation (노래)|My Generation]]〉, 〈[[I Can't Explain]]〉과 같은 톱 10 싱글들을 배출하며 이름을 얻기 시작하였다. 또한 무대 위에서 악기를 부수는 "선구자적" 쇼맨십 역시 이들의 명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미국]]으로의 진출은 [[1967년]] 발표한 〈[[I Can See for Miles]]〉이 톱 10에 진입하면서 가속화되었는데 이후 발표된 5개의 앨범, 《[[Tommy]]》([[1969년]]), 《[[Live at Leeds]]》([[1970년]]), 《[[Who's Next]]》([[1971년]]), 《[[Quadrophenia]]》([[1973년]]), 《[[Who Are You (음반)|Who Are You]]》([[1978년]])이 모두 차트 5위 안에 들면서 이들의 인기는 절정에 달했다.
 
키스 문이 [[1978년]] 약물 과다 복용으로 갑작스레 사망한 후, 더 후는 드러머 [[케니 존스]]를 영입하였다. 이후 《[[Five Dances]]》([[1981년]]), 《[[It's Hard]]》([[1982년]])을 발표한 후 [[1983년]] 공식 해체되었다. 이후 [[라이브 에이드]]([[1985년]]), 더 후 25주년 기념 투어([[1989년]]), 쿼드로피니아 리바이벌 투어 ([[1996년]], [[1997년]]) 등에서 재결합해 활동하기도 했다. [[2000년]], 살아있던 3명의 초기 멤버가 새 앨범을 내기 위해 재결합했으나, [[2002년]] 존 엔트위슬의 사망으로 이는 지연되었다. 하지만 이후 피트 타운센드와 로저 돌트리는 《[[Endless Wire]]》([[2006년]])와 같은 앨범을 발표하며 계속해서 더 후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2010년 2월 8일 [[슈퍼볼]] 하프타임쇼 무대에 서기도 하였다.
 
[[2012년 하계 올림픽 폐막식]]에서 음악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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