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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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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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브르 (펜싱)|사브르]] (Sabre): 양손을 제외한 허리 위의 상반신 전체를 표적으로 하는 베기형 경량 무기이다. 찌르기와 베기 모두 투셰로 인정이 된다. 플뢰르의 경우처럼, 표적을 벗어난 위치를 찌르거나 베었을 경우 투셰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플뢰르와의 차이점은 표적을 벗어난 위치를 찌르거나 베어도 경기를 멈추지 않는다. 양쪽 선수들이 모두 유효면을 찌르거나 베어 적녹등이 동시에 점등된 경우, 주심은 프리오리테에 규칙에 따라 득점자를 결정한다.
* [[에페]] (Épée): 전신을 표적으로 하는 찌르기형 중량 무기이다. 모든 공격은 찌르기로만 가능하며, 베기는 무효이다. 베기를 하였을 경우에는 투셰로 인정되지 않으며 경기가 정지되지 않는다. 플뢰르와 사브르와는 다르게, 에페는 프리오리테가 없어 동시타격이 발생한 경우 양쪽 모두 투셰로 인정된다. 그러나, 개인전에서 한선수가 14점, 단체전에서 한팀이 44점을 득점한 상황에서 동시타격이 발생한 경우 양쪽 모두 투셰로 인정되지 않는다.
 
== 역사 ==
현대 펜싱은 [[스페인]]에서 유래하였는데, 디에고 데 발레라 (Diego de Valera) 가 1458년과 1471년 사이 카톨릭 군주에 의해 공식적인 결투 금지령이 떨어지기 전까지 저술된 무기 논문 (Treatise on Arms) 에 규율이 적혀 있다. 스페인이 유럽 최강자로 군림하게 된 이후, 스페인 육군은 펜싱을 양국간의 주요 전장이었던 남이탈리아를 비롯해 여러 국가로 전하였다.<ref>[http://www.hcs.harvard.edu/~fencing/oldweb/history/fencinghistory.html A History of Fencing]. Hcs.harvard.edu. 2012-05-16 확인.</ref><ref>[http://www.educar.org/Educacionfisicaydeportiva/historia/esgrima.asp Historia de la Esgrima]. Educar.org (1999-02-22). 2012-05-16 확인.</ref>
 
현대 펜싱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는 18세기로,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펜싱 아카데미와 그 영향을 받은 프랑스 펜싱 아카데미에 의해 현대 펜싱의 기틀이 잡혔다.<ref name="www.fencing.net intro2"/><ref>[http://library.thinkquest.org/15340/historyessay.html A History of Fencing]. Library.thinkquest.org. 2012-05-16 확인.</ref> 스페인 펜싱 아카데미는 19세기 전까지 별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현재, 이 세 국가의 아카데미에서 유래한 펜싱이 전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결투는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그 횟수가 줄어들었고, 몇몇의 경우를 예외로 하면 결투가 드물었다. 한때, 남성의 철학적 배경이 길들였던 결투 (몇 펜싱 마스터가 대부분 사람들은 한두번의 수업으로도 많은 훈련을 받았다고 여기기도 하였지만), 는 전장에서 그 의미와 함께 사라졌다. 펜싱은 스포츠로 명맥을 유지하였고, 토너먼트와 챔피언쉽이 현재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날카로운 무기를 활용한 결투의 준비는 여전히 요구되었고, 그에 따라 훈련 방식과 기술이 변경되었다.
 
1936년 에페를 기점으로 부심은 전자 장비로 대체되었으며,<ref>Alaux, Michel. ''Modern Fencing: Foil, Epee, and Sabre''. Scribner's, 1975, p. 83.</ref> 유효 투셰에 따라 적색 / 녹색의 램프 전등이 점등되고, 가청음이 나오도록 하였다. 플뢰르는 1956년에, 사브르는 1988년에 처음으로 전자장비가 도입되었다. 전자장비의 도입은 더 공정한 판정을 가능게 하였고, 훨씬 빠른 동작, 가벼운 접촉, 여러 회에 걸친 접촉에도 정확한 판정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 주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