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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레부사'''({{lang|el|Καθαρεύουσα,}} {{해석|"순수한"}})는 [[그리스어]]의 한 형태로, 19세기 초 [[그리스]]의 지식인과 혁명 지도자 [[아다만티오스 코라이스]]가 견지하던 언어였다. 1788년 [[몽펠리에 대학]]을 졸업한 코라이스는 [[파리 (도시)|파리]]에서 [[망명]] 생활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었다. 그는 [[그리스 독립 전쟁|그리스 해방]]에서 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카타레부사'''(Καθαρεύουσα, "순수한")는 [[그리스어]]의 한 형태로, 19세기 초 [[그리스]]의 지식인과 혁명 지도자 [[아다만티오스 코라이스]]가 견지하던 언어였다. 1788년 [[몽펠리에 대학]]을 졸업한 코라이스는 [[파리 (도시)|파리]]에서 [[망명]] 생활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었다. 그는 [[그리스 독립 전쟁|그리스 해방]]에서 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카타레부사 그리스어는 [[고대 그리스어]]와 [[현대 그리스어]]의 중간점에 자리잡은 언어이다. 카타레부사에서는 고대의 어휘를 더욱 받아들이면서도 고전 문법의 간략화된 형태를 강조하였다.
카타레부사는 당시 공문서에 널리 쓰였으며, 그리스 학자들이 쓴 공식적인 글에도 쓰였다. 근대 그리스의 구어에서 '카타레부사'란 말은 그저 '공식 언어'를 뜻하게 되었다.
 
몇 년 뒤 카타레부사는 공무나 공적인 목적(가령 정치에서는 서한, 공문서, 언론 보도 등)으로 쓰였으며, 일상에서는 [[민중 그리스어]]({{lang|el|δημοτική}})가 쓰였다. 이렇듯 두 언어를 쓰는 상황 때문에 대부분의 그리스 사람들은 카타레부사에 적응하지 못하면 공적인 영역에서 배제되었고 교육을 더 받을 수도 없었다. 1976년 민중 그리스어가 공식 언어가 되었으며, 20세기 말 카타레부사는 완전히 퇴화하였다. 그러나 200년 동안 카타레부사에서 채택한 여러 문법이나 구문 규칙, 그리고 카타레부사에서 나온 어휘가 민중 그리스어와 접촉하였기 때문에 오늘날 그 의의가 재조명되기도 한다.<ref>[http://www.translexis.demon.co.uk/new_page_2.htm www.translexis.demon.co.uk]</ref> 혹자는 오늘날의 [[현대 그리스어]]가 더 이상 옛 민중 그리스어가 아니라, [[코이네 그리스어]]의 영향이 이어져 19세기의 전통적인 카타레부사와 민중 그리스어의 절충이라고 보기도 한다. 카타레부사가 나중에 기여한 점 가운데 하나는 이전 시대에 없던 "신문", "경찰", "자동차", "비행기", "텔레비전" 등의 개념을 다른 언어에서 바로 차용하지 않고 고전어에 기반하여 결합한 것을 꼽을 수 있다.
 
== 주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