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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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묘청'''(妙淸, ? ~ [[1135년]])은 [[고려]] 중기의 [[승려]], 문신이다. [[1126년]] [[서경 (고려)|서경]]파 관료들의 추천으로 [[고려 인종|인종]]의 왕사가 되었다. 그는 [[서경 천도론]]을 주장했으나 [[개경파]]
[[1135년]](인종 13년) 묘청은 분사시랑(分司侍郞) 조광(趙匡)·병부상서 유담·사재소경(司宰小卿) 조창언(趙昌言)·안중영(安仲榮) 등과 함께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서경에서 거병한]] 뒤 군사를 보내어 절령(岊嶺)<ref>자비령(慈悲嶺)</ref> 길을 차단하고, 국호를 대위(大爲), [[연호]]를 천개(天開), 군호(軍號)를 천견충의군(天遣忠義軍)이라 칭하고, 곧장 개경으로 진군하겠다고 밝힌다. [[윤언이]], [[정지상]] 등과 함께 서경파의 지도자였다. 일명 정심(淨心)이라 불렸다. [[서경 (고려)|서경]]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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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 생애 초반 ===
묘청은 현재의 [[평양직할시|평양]]인
그는 [[불교]] 교리 외에도 [[도교]]의 비의에도 능통했는데, [[1126년]]([[고려 인종|인종]] 4)에 [[백수한]](白壽翰)이 검교소감(檢校少監)으로 서경에 파견되자 묘청을 스승이라 하고, 두 사람은 음양비술(陰陽秘術)을 사용하면서 백성들을 현혹시켰다고 한다. 또한 당시 고려 사회에는 신라 말기 이래 [[풍수지리설]]이 크게 성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묘청 등의 주장은 큰 호소력을 가지게 되었다. === 서경 천도론 ===
{{참고|풍수지리학|서경천도론}}
묘청은 개경이 이미 업운이 쇠진하여 궁궐이 다 탄 것이라며 왕기가 서려 있는 서경으로 국도을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ref name="pare1996254"/> 정지상을 비롯한 서경 세력은 서경천도론이 현실화될 경우 자신들이 조정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정치의 활로를 모색하고 있던 [[인종]]에게 묘청을 천거하는 상소를 올린다.<ref name="pare1996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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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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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2}}
* [[묘청의 서경천도운동]]
* [[고려 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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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채호]]
* [[신돈]]
{{Col-2}}
* [[서경천도설]]
* [[풍수지리학]]
* [[백수한]]
* [[이자겸]]
{{Col-end}}
== 기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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