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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말에서 후삼국의 혼란기동안에 신라가 애써 구축한 행정체제가 완전히 붕괴되는 바람에 삼한을 재통일한 고려는 처음부터 완전히 새로 행정체제를 구축할 수 밖에 없었고 그나마도 신라에 비해 무척 엉성한 모습을 보였다.
고려초에 전국의 12개 고을에 12목을 설치하기 전까지 전국은 지방호족에 의한 [[지방자치제]]가 이루어졌고 그 전까지는 과세를 위한 관리들의 출장식 파견외에는 어떤 행정권도 휘두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중앙정부가 지방으로 행정권을 행사하면서 전국의 현들은 [[현령]](縣令)을 두었던 현과 중앙에서 전혀 지방관이 배치되지 않던 속현(屬縣)의 두 가지로 구분되었다. 속군, 속현등의 발생원인은 후삼국시기에 강력한호족이 지배하는 고을에 인근 고을들이 지배를 받으면서 생긴 지배관계를 중앙정부에서 행정체계에 반영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 외에 너무 작은 규모의 고을의 수가 늘어 일일이 지방관이 파견될 수 없었던 탓도 있어서였다. [[현령]]이 배치된 현은 독자적인 행정이 행해졌으나 속현은 지방관이 배치된 다른 지방 행정 관청에 완전히 예속되었다. 《고려사》 지리지에는 고려 전기에 주현 130개, 속현 374개를 기록하고 있다. [[고려 예종|예종]] 때부터는 속현에도 [[감무]](監務)라고 부르는 7품의 지방관이 점차적으로 배치되었고 이후 지속적으로 감무를 파견하는 현의 수를 늘려서 속현 현상을 해소하려 노력해갔다. 공민왕때에는 [[현령]]과 [[감무]]를 모두 안집별감(安集別監)이라는 명칭으로 일시 통일했다가 창왕대에 되돌렸었다. 조선시대 이후에 감무는 [[현감]](顯監)으로 바뀌었고 그외의 감무가 미처 파견되지 못할만큼 작은 속현은 서로 통폐합하거나 소속되었던 고을로 합병되었다. 조선시대에 전국의 현은 164개였는데 종 5품의 현령이[[현령]]이 다스리는 큰 현은 26곳, [[현감]]이 다스리는 작은 현은 138명이었다. 속현은 1530년 중종 25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2개의 속현이 기록되어 조선중기까지 속현이 조금이나마 남아있었다가 결국 17세기경에 모두 소멸되었다.
갑오개혁때의[[갑오개혁]]때의 행정체제 개혁으로 현들은 모두 군으로 승격되어 현 제도는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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