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백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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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천은 [[고구려]]의 도납현(刀臘縣) 치악성(雉岳城)으로 불리다가 [[신라]] 때는 구택으로 고치고 해고군(海皐郡)의 영현(領縣)이 되었으며, [[고려]] 초부터는 배천으로 고치고 조선 태종 13년(1413)에 군이 되었으며, [[1914년]]에 연안군과 합쳐졌다.
* [[1914년]] [[4월 1일]] : [[연안군]](延安郡)과 [[배천군]](白川郡)을 합하여 연백군이 되었다.
*1935년 연안면을 연안읍(邑)으로 승격하였다. (1읍 19면)
* [[1945년]] [[9월 2일]] :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분할 점령함으로써 연백군의 대부분 지역이 [[미군정]] 관할 아래, [[38선]] 이북인 목단면 · 금산면 · 운산면 · 화성면은 [[소련군정]] 관할 아래 들아갔다. (1읍 15면)
* [[1945년]] [[11월 4일]] : [[황해도]]의 38선 이남 지역이 [[경기도]]에 편입되었다. 이에 따라 황해도 연백군은 경기도 연백군이 되었고, 38선 이남의 [[벽성군]] 4개면(내성면 · 추화면 · 일신면 · 청룡면)이 연백군에 편입되었다.<ref>[[:s:군정법령 제22호|군정법령 제22호]] 시, 도직제 (제정 [[1945년]] [[11월 3일]])</ref> (1읍 19면)
:{| class="wikitable" style="font-size: 95%;"
| colspan=2 | 군정법률 제22호 시도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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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해도]] [[벽성군]] 추화면, 내성면(영천면 일부 합면), 일신면, 청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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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 [[1952년]] 12월 : [[한국 전쟁]] 중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행정구역을
* [[1953년]] [[7월 27일]] : [[한국 전쟁]]의 결과, 연백군 전역(全域)이 [[한반도 군사 분계선|군사분계선]] 이북 지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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