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길 (1586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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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정이 성공하자 [[이조]][[좌랑]](吏曹佐郞)이 되고, 그 해에 [[정랑]]을 거쳐 [[참의]](參議)로 고속 승진했다가 [[이조]][[참판]]이 되어 비변사 유사당상을 겸임하였으며 [[비변사]] 제조까지 승진하였으며, 그뒤 [[홍문관]][[부제학]], [[사헌부]][[대사헌]] 등을 거쳤다. 이후 반정에 참여한 공로로 [[정사공신]](靖社功臣) 1등관에 녹훈되고 완성군(完城君)에 녹훈되었다. [[1624년]] 반정공신들에 대한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이괄]]이 난을 일으키자 그를 회유하였으나 [[이괄]]은 최명길의 설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이괄의 난]]으로 임금이 도망가자 [[한성부]]의 민심을 수습하는 한편, [[이괄의 난]]이 진압된 뒤에도 유언비어 확산을 막으며 인조반정과 연이은 이괄의 난으로 흉흉해진 민심을 수습하였다.
 
[[1624년]] [[이괄의 난]] 당시 그는 무신이 아닌데도 총독부사(摠督副使)직을 자원하였다. 그는 피난한 조정의 총독부사 자격으로 암살의 위험 속에서 홀로 [[임진강]]을 건너가 원수 [[장만]](張晩)<ref>본처 장씨의 친정아버지이기도 하다.</ref>을 찾아갔고, 그와 협의하여 계책을 세우고 투항을 독려하는 등 안현(鞍峴) 전투를 승리로 이끎으로써 반란 진압에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하였다.
 
==== 인조 반정 초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