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길 (1586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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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조선]]이 멸망한 후에 이르러 그가 [[청나라]]와 화의, 타협정책을 추진함으로서 [[조선]]의 병란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았다는 긍정적 평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이르러 [[김상헌]]의 주전론도 옳고, 최명길의 화의론도 옳다는 인식이 나타나게 되었다.
 
묘소는 [[청원군]] 북하면 대율리로, [[윤관]] 영정이 봉안된 호남사 근처 28번 군도를 따라 서남쪽 방향으로 내려가다 만나는 511번 지방도에서 좌측으로 돌아간 입구에 위치해 있다. 최명길의 묘소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충청북도 기념물 제68호로 지정되었으며, 신도비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59호로 지정되었고지정되고 [[1979년]]에 비각을 신축하였다.
 
== 저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