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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종, 명종 때의 최고의 기생 [[황진이]]는 당대의 최고의 은둔학자 [[서경덕]]을 유혹하기도 했다.<ref name="park198">박영규,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도서출판 들녘, 1996) 198페이지</ref> 하지만 그녀는 [[서경덕]]을 유혹하는 데는 실패하고 오히려 그의 학문과 고고한 인품에 매료되어 사제 관계를 맺기도 한다.<ref name="park198"/>
 
그의 문인으로는 [[허엽]], [[박순]](朴淳), [[민순]], 박민헌(朴民獻), 고경허(高景虛), 신응시(辛應時), [[황진이]] 등이 배출되었다. 문인의 한사람인 [[신응시]]는 후일 '‘오관산 아래 화담 위에 대그릇 / 밥 한 평생 가난을 즐겼네. / 오도가 떨어지지 않아 선각이 되었는데 / 성대에 불행히 일민으로 마쳤네 / 고도 당시에 고사를 흠앙하였더니 / 오늘 지하에 덕인을 매장하였네 / 유명에 알려 그 포증 두루하니 / 아! 백골에도 성은이 젖었어라.' 하며 그를 추모하는 시를 한수 남겼다.
 
==== 최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