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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협]]의 문인이다. 여흥부원군 [[민유중]]의 외손자이며 [[민진후]], [[민진원]], [[인현왕후]]의 친조카이고, [[오두인]]의 사위이다. 작은 어머니인 안동 김씨는 [[김수흥]]의 딸이며, 아내 해주 오씨는 [[김창협]]의 사위인 오진주의 누이이기도 하다. [[조선 숙종|숙종]]의 처조카이자 [[노론]]을 대표하는 핵심인물들의 가까운 친인척으로써 [[노론]]의 중심인물로 활동했다.
 
[[조선 숙종|숙종]] 28년(1702년) 알성문과에 급제하여 관계에 진출하였으며, 《단종실록(端宗實錄)》 편찬에 참여했다. 숙종 42년에 승지에 이르러 ‘가례원류(家禮源流)’시비가 일어나자 [[노론]] 측에 가담하여 [[소론]]을 통박했고, 동왕숙종 45년 영남균전사(嶺南均田使)로 나가 토지정책을 논하다가 파직당한 적도 있었다. 신임사화(辛壬士禍) 직후에직후 관직을 은퇴,버리고 [[인제군|인제]]에 들어가 [[성리학]] 연구에 전심,전심하다가 [[조선 영조|영조]] 1년에는1년에 이조참판을 지냈다. 동왕영조 17년에는 예문관 제학, 동왕영조 19년에는 우참찬 등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그는 조선 후기 성리학계의 대가로서 인물성동이논쟁(人物性同異論爭)에 있어 [[이간]]의 학설을 지지하여, [[한원진]] 등의 호론(湖論)을 반박, 낙론(洛論)의 대표적 이론가로 알려져 있다. 낙론을 지지하면서도 유기설(唯氣說)에는 반대하고, “마음을 말함에 기(氣)만을 가지고 단언할 수는 없으며 기가 이보다 승(勝)하면 난(亂)하고 이가 기보다 승하면 치(治)하니” 성현의 말씀의 진실은 ‘이위기주(理爲氣主)’의 네 글자밖에 없다고 하였다. 즉 그는 기일원론(氣一元論)이 독단에 빠질 위험성을 경고하고, [[이이|율곡]]의 본의에 따라 온건론을 취하고 주리파와의 절충·타협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 조부 : [[이숙]]
* 외조부 : [[민유중]]
* 외조모 : 은진 송씨([[송준길]]의 딸)
* 외삼촌 : [[민진후]], [[민진원]], [[민진주]]
* 이모 : [[인현왕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