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동 (대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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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동 지역은 [[백제시대]]는 우술군이었다가, [[신라시대]]에는 비풍군으로 개명하였고, 그 밑에 유성현과 적오현(뒤에 덕진현)을 그 속현으로 두었다. [[고려시대]] 초기에는 비풍군을 회덕현으로 읍호를 바꾸었고, 이후 [[1018년]] [[고려 현종|현종]] 9년에는 공주의 속현으로 귀속되었다. 그런데 고려시대에는 유성현과 덕진현이 공주의 속현이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고려 현종 9년 군·현의 개편시에 회덕의 속현에서 벗어나 공주의 속현이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후 회덕현은 [[1172년]] [[고려 명종]] 2년에 처음으로 감무(조선시대의 현감과 같음)를 두게 되어 주현으로 승격하게 되었다.
조선왕조가 건국된 후 [[1413년]] [[조선 태종|태종]] 13년에 전국을 8도제로 개편하면서 행정구역을 편성하면서, 회덕은 충청우도 공주목에 속하는 종6품의 현감이 다스리는 현이 되었다. 이와 같이 8도제의 실시와 더불어 소현의 병합이 이루어졌는데 이 때에 유성현이 폐지되면서 그 영역이 회덕현과 진잠현에 속하게 되었다. [[1789년]] 정조 13년의 《호구총수》에 기록된 것을 보면 지금의 대화동이 회덕현 현내면 ‘대화리’로 되어 있어 조선중기 때부터 ‘대화리’라는 지명과 행정구역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1895년]] [[조선 고종|고종]] 32년 [[갑오개혁]]으로 인한 행정구역의 개편으로 태종이래 실시되어왔던 8도제가 폐지되고, 전국이 23부제를 실시하면서, 종래의 부·목·군·현 등의 지방행정 단위를 모두 폐합하여 336개 군을 신설하고, 이를 23개 부에 속하게 하였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회덕군이 진잠군과 통합되어 대전군이 되면서대화리는 율사동·구만리·법동 일부와 서면의 구만리 등 일부를 합하여 대전군 내남면 대화리가 되었다. [[1931년]]에는 대전군 대전면이 읍으로 승격하여 대전군 1읍 11개 면으로 되었으며, [[1935년]] [[11월 1일]]에는 대전읍이 부로 승격됨에 따라 대전부와 대덕군으로 분리되었고 대화동은 대덕군 내남면 대화리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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