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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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부경대학교]] 명예 [[정치학]] 박사
* [[2010년]] [[서강대학교]] 명예 정치학 박사
 
== 논란과 의혹 ==
=== 사생아 존재 여부 의혹 ===
[[2007년]] 대선 직전 그에게 [[최태민]]과의 사이에서 숨겨둔 사생아 딸이 있다는 의혹이 여러 번 제기되었다. <ref name="kuki0719">[http://www.kukinews.com/news/article/print_info.asp?arcid=0920602696.txt <nowiki>[</nowiki>한나라당 검증청문회<nowiki>]</nowiki> 朴 “숨겨둔 자식? DNA검사 해 주겠다”… 관련의혹 부인] 쿠키뉴스 2007-07-19 </ref> <ref name="ytn0719">[http://www.ytn.co.kr/_ln/0101_200707191720086554 '부동산'·'최태민' 집중 추궁] YTN 2007-07-19</ref> 공식적으로는 미혼으로, 이전에도 그의 사생아 의혹이 여러번 제기되었으나 [[2007년]] 대선을 계기로 공개적으로 공론화되었다.
 
박근혜가 최태민과의 사이에서 부적절한 관계였고 그 사이에 숨겨둔 사생아 아들 또는 딸이 있다는 의혹은 시중의 소문을 넘어 정치권으로도 전달되었다. [[2007년]] 인사 검증 때도 이 문제가 집중 도마에 오르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그는 [[7월]]의 [[한나라당]] 인사 검증 때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한 검증위원이 고(故) 최태민 목사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묻자 ‘숨겨둔 아이’가 나오면 DNA 검사까지 받겠다고 했다.<ref>[http://weekly.donga.com/docs/magazine/weekly/2010/12/13/201012130500013/201012130500013_1.html 박근혜 불가론 박근혜가 만든다?]</ref> 그는 "내게 애가 있다면 데리고 와도 좋다”며 “DNA 검사까지 해 주겠다<ref name="ytn0719"/>”며 자신에게 숨겨둔 자식이 있다는 일부 주장도 강력 부인했다. <ref name="kuki0719"/>
 
한편 인사검증회에 참여한 어느 참관인으로부터 "독신인데 저출산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자 그는 "사실 저도 결혼을 하고 싶었지만 사람 운명이 생각하지 않은 다른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ref name="gumbul">[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0707/h2007071918320021060.htm 박근혜, 차분하게 각종 의혹 적극 해명] 한국일보 2007년 07월 19일자</ref> 이때 패널로 참석한 승려 보광은 "최 목사와 자꾸 연결되는 것은 다 전생의 업"이라고 지적했다. 박근혜는 "최 목사와 자꾸 연결되는 것은 다 전생의 업"이라는 보광 스님의 말에 잠시 웃다가 입을 삐쭉하더니 싸늘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ref name="gumbul"/> 숨겨둔 자녀가 아들이라는 설, 딸이라는 설 등의 소문은 무성하나 근거는 밝혀지지 않았다.
 
=== 전두환 정치자금 6억 수수 의혹 ===
박근혜는 2007년 10.26 사태 직후 [[전두환]]으로부터 6억원을 받은 사실을 인정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9&aid=0000145400 mbn 24시 주요뉴스] MBN 2006년 06월 27일자</ref> [[1980년]] 박근혜와 그의 형제들 앞으로 6억원의 돈이 지급되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후 전 합수본부장에게서 9억원을 받은 뒤 김재규 사건 수사 격려금으로 3억원을 되돌려 주었다는 것에 대한 의혹이 여러 번 제기되었다.<ref name="chung01">[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0707/h2007071918312921060.htm 박근혜 "아이 있다는 말 천벌받을 일"] 한국일보 2007년 07월 19일자</ref> 이 돈은 박근혜와 그의 두 동생에게만 지불되었다. 그리고 액수도 6억 달러 설, 9억 달러 설 등이 제기되어 왔으나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전두환]]의 자금을 받았다, 받지 않았다는 [[2002년]] 무렵하고 그가 당 대표로 있을 때에도 누군가에 의해 유포되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박근혜는 언급을 회피해 왔다. [[2007년]]의 인사 청문회에서 이 문제가 다시 언급되었다. 이에 대해 박근혜는 '9억원이 아니라 처음부터 6억원을 받았다. 유자녀 생계비 명목으로 받았고 돌려준 것은 없다. 전 합수본부장의 심부름으로 왔다는 사람이 만나자고 해서 청와대 비서실에 갔더니 '이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쓰다 남은 돈이다. 생계비로 쓰라'고 전해 줘서 감사하게 받아 나왔다.<ref name="chung01"/>'며 [[생계 유지비]]로 받았다고 말했다. 그가 [[전두환]]에게서 9억을 받았다, 6억을 받았다 는 등의 의혹으로만 제기되어 오던 것이 2007년의 인사검증회에서 그가 시인함에 따라 사실로 확인되었다.<ref name="syegye11">[http://www.segye.com/Articles/News/Opinion/Article.asp?aid=20070719000293&ctg1=01&ctg2=&subctg1=01&subctg2=&cid=0101100100000&dataid=200707191725000261 (사설) '절반의 성공 그친 '李·朴 검증청문회'] 세계일보</ref>
 
그가 청문회에서 자금을 받은 것과 액수를 밝힘으로서 의혹은 사실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윤호중]]은 이를 비판하였다. 그에 의하면 “박 전 대표가 전두환으로부터 받은 돈이 9억원이 아니라 6억원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을 빼고는 하나도 새롭게 검증된 것이 없는 청문회였다.<ref>[http://economy.hankooki.com/lpage/news/200707/e2007071919165170290.htm <nowiki>[</nowiki>한나라 대선 예비후보 검증 청문회<nowiki>]</nowiki> 범여권 반응]</ref>”는 것이다.
 
=== 성북동 주택 취득 의혹 ===
그에게 제기되었던 의혹 중의 하나는 [[성북동]] 주택을 취득한 경위였다. 이는 그가 [[한나라당]] 대표로 재직할 때에도 나타났고, 보통 [[박정희]]의 신당동 사저와 같은 것으로 여겨졌으나, [[2007년]]의 대통령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이르러 다시 언급되었다. 일각에서는 신당동 사저와 성북동 박근혜 자택을 오인하였으며 [[박정희]] 내외의 비극적인 죽음에 가려져서 묻혀졌으나 [[2007년]] 대선을 전후해 누군가에 의해 인터넷에 퍼지면서 다시 수면위로 드러나게 되었다.
 
성북동 주택은 기업인 [[신기수]]가 그에게 공짜로 주었다. 그런데 박 후보는 경남기업 신기수 회장에게서 성북동 주택을 증여받은 것과 관련해 탈세 가능성이 제기되었다.<ref name="syegye11"/> 2007년 인사검증회 당시 "성북동 주택 신기수씨가 무상으로 줬나" 하는 의혹에 대해 그는 "아버지 유품 보관할 장소로 쓰라며 대가없이 주었다"고 대답했다.<ref name="chung01">[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0707/h2007071918312921060.htm 박근혜 "아이 있다는 말 천벌받을 일"] 한국일보 2007년 07월 19일자</ref> 또한 일부 언론으로부터 5공화국 때인 1982년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경남기업 신기수 회장이 성북동 주택을 무상으로 줬다는 의혹도 있었다.<ref name="chung01"/>
 
한편 그는 성북동 사저는 사사로운 청탁 목적은 아니라고 해명한 바 있다. 그는 "나는 부모님이 사시다가 남기신 유일한 재산인 신당동으로 이사를 왔다. 부모님 유품을 정리해야 하는데 집이 너무 좁았다. 이런 사정을 알고 아버지와 인연이 있던 신 회장이 성북동에 집을 마련해 '유품보관할 장소가 있으니 이사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해서 받아들였다.<ref name="chung01"/>"고 반론하였다.
 
=== 최태민과의 관계 의혹 ===
1970년대부터 [[최태민]] 목사는 그의 측근으로 활동해 왔다. 그 과정에서 [[최태민]]과 그 일가들의 비리 행위를 묵인했다는 의혹과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박근혜]]가 영남재단, 정수장학회 등을 운영하면서 그를 보좌했던 최태민의 비리 문제는 오랫동안 도마에 올랐다. 7개의 이름과 6번 결혼한 전력에도 불구 구국선교단·구국봉사단 총재 등으로 박후보를 보좌하면서 박후보의 이름을 팔아 이권에 개입한 의혹을 받았다.<ref name="choiui">[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7200324291&code=910100 의혹의 중심엔 ‘부적절한 인연?’] 경향신문 2007년 02월 20일자</ref> 이후 이 문제는 수시로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2006년]]의 대통령 후보자 인사 검증 당시 박근혜 전 대표는 검증청문회에서 고 최태민 목사 비리 의혹에 대해 실체가 없다고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9&aid=0000145400 mbn 24시 주요뉴스] MBN 2006년 06월 27일자</ref> 그러나 최태민 관련 의혹은 2007년 다시 제기되었으며, 최태민과의 부적절한 관계 의혹도 다시 제기되었다. 2007년의 한나라당 인사검증회 당시 '중정 조사에 의하면 최 목사는 공사 수주, 장군 승진, 국회의원 공천 명목 등으로 돈을 받은 단서가 포착되는 등 비리 건수가 40여건 된다고 한다. 알고 있었느냐<ref name="chung01"/>는 질문에 대해서도 "아버지가 나와 중정 부장, 최 목사, 관계되는 사람들을 불러 직접 조사를 하실 때 어떻게 횡령하고 사기를 쳤는지 답하라고 했다. (비리) 내용이 막연했다. 실체가 없는 얘기로 끝나서 아버지가 대검에서 조사해 보고 문제가 있으면 법적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하셨다. 아버지는 친척을 감옥에 보낼 정도로 엄격하신 분이다. 그 쪽에 가서도 별다른 일이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정권들이 나를 봐주거나 돌볼 상황이 아니었다. 굉장한 매도의 기간이었다. 잘못이 있었다면 굉장히 시끄러웠을 거다.<ref name="chung01"/>'"라고 반박했다.
 
또한 '검증위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최초에 중정은 최 목사를 구속하자고 건의했고, 검찰이 조사해 보니 중정 조사보다 훨씬 많은 비리가 나왔다. 결국 최 목사가 봉사단 총재에서 물러나는 선에서 이 문제가 일단락됐다. 그런데도 최 목사의 비리 혐의가 불확실하다고 할 수 있'느냐<ref name="chung01"/>'는 질문에 대해서도 "대검에서 엄청난 비리가 나와서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처리해야지 왜 덮나. 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세무조사, 검찰 조사가 있었는데 왜 법적 조치를 안 했는지 의아하게 생각한다.<ref name="chung01"/>"고 반박을 제기했다.
 
[[최태민]]과 그 가족들의 비리행위나 비위 의혹에 대해 박근혜는 최태민이 모함을 받는 것이라 본다. 그는 [[최태민]]은 모함을 당하는 것이며 억울하다고 보고 있다. 2007년의 인사검증회 당시 '최 목사가 지금도 결백하고 모함받고 있다고 생각하나 .<ref name="chung01"/>는 질문에 대해 "내가 아는 한도에서는 의혹의 실체가 없지 않나 생각한다. 현실이 그러니까. 앞으로 실체가 나온다면 내가 모르던 일이니까 굉장히 유감스럽고 잘못된 일이다.<ref name="chung01"/>"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과는 달리 최태민과 관련되었던 사실은 [[김재규]] [[중앙정부부장]] 등을 통해 [[박정희]] [[대통령]]까지 보고되고 있었다.
 
[[2007년]]의 청문회 초반 고 [[최태민]] 목사에 대한 질문이 집중되면서 박 전 대표의 목소리 톤이 약간 높아졌다.<ref name="gumbul"/> 다른 검증위원이 최태민과의 자녀 존재 여부를 묻자 박근혜는 면접장에서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에 김명곤 [[한나라당]] 검증위원은 "최 목사와 관련된 질문만 나오면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냐"고 꼬집자 박 전 대표는 작심한 듯 "아기가 있다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얘기까지 나온다. DNA 검사라도 해줄 테니 애를 데려오라"며 언성을 높였다.<ref name="gumbul"/> 그러나 [[최태민]] 일가의 비리 의혹에 대한 것은 정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어 아직까지 의혹으로 진행되고 있다.
 
=== 육영재단 운영 관련 의혹 ===
[[2007년]] [[7월]]의 한나라당 인사검증 청문회 당시 박근혜는는 육영재단 관련 의혹과 관련, 형제 간에 갈등이 불거진 것이 아니냐는 추궁이 잇따르자 "실체가 없는 일인데 자꾸 말이 커진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ref name="gumbul"/> 육영재단 재산 착복 의혹<ref name="chung01"/>이 제기되자 그는 '보수·판공비 일절 안받아… 전횡 소문도 사실무근.<ref name="chung01"/>'이라며 반박하였다. 박후보의 동생인 근령씨는 육영재단 운영을 놓고 대립한 문제가, 지만씨는 미국 유학과정에서 영남대 공금 전용 문제는 오래도록 도마에 올랐다.<ref name="choiui"/>
 
인사 청문회 당시 영남대, 육영재단 관련 의혹 중 "영남투자금융이 육영재단에 기부금을 출연한 것이 부적절하지 않은가"라는 질문에는 "얘기를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ref name="gumbul"/> 말 실수도 있었다. 박 전 대표는 영남대 의혹에 관한 질문에 "대구대와 청구대가 합치는 과정에서 학교를 맡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책임"이라고 답했다. 그는 이어 잠시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이병철 전 회장"으로 정정했다.<ref name="gumbul"/> '82년 10월부터 90년 11월까지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했는데 보수와 판공비를 받은 적이 없는가.<ref name="chung01"/>'라는 질문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육영재단 사람들이 이사장직을 맡아 유지를 이어야 한다고 건의해 책임을 느끼고 이사장을 맡았다. 보수와 판공비를 받지 않았다. 일주일에 2, 3번 출근했다.<ref name="chung01"/>"라고 답했다.
 
(박근혜가) '이후 육영재단 이사장을 퇴임한 이유와 관련, 최 목사와 딸이 박 전 대표와의 친분을 과시하고 전횡을 일삼아 직원들이 반발한 것이 원인이라는 말이 있다.<ref name="chung01"/>'는 의혹에 대해 "어머니 기념사업을 육영재단에서 같이 했고, 당시 최 목사가 기념사업 일을 도왔다. 구조조정에 불만을 품은 직원들의 소요가 있었고, 오해가 있어서 '최태민 물러가라'는 식으로 데모가 있었지만 최 목사나 딸이 결코 육영재단 일에 관여한 적이 없다.<ref name="chung01"/>"고 반박하였다. 또한 [[육영재단]]의 운영 과정에서 [[최태민]]이 개입했다는 의혹 역시 제기되고 있다. 최 목사가 육영재단 고문의 직함을 갖고 이사장인 박 전 대표가 결재를 하기 전에 먼저 결재를 할 정도로 재단 운영에 깊이 관여했다.<ref name="chung01"/>는 의혹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 최 목사가 고문직을 하지 않았고, 최 목사가 연로해 고문으로 예우해 부른 것뿐이다.<ref name="chung01"/>"라고 반박하였다.
 
한편 "박근혜가 [[박근령]]의 [[육영재단]] 이사장 해임의 배후 역할을 했다"는 내용의 비방글이 동생 박근령의 남편이 적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ref>[http://www.cbs.co.kr/nocut/show.asp?idx=1325756 '박근혜 비방글'은 근령씨 남편이 작성 ]</ref> 이 문제로 [[신동욱]] 교수가 징역 1년 6개월형에 확정되는 등<ref>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aid/2012/02/17/7030554.html?cloc=olink|article|default</ref> 논란의 여지가 존재하고 있다.
 
=== 영남대학교 관련 의혹 ===
[[영남대학교]] 재단 이사장 시절의 전횡과 정관 1조에 교주 박정희 라는 조항을 삽입한 것 역시 오래도록 문제시되어 왔다. 영남대 이사장 시절 전횡 의혹<ref name="chung01"/>과 영남대 재단이사가 된 지 1년 후에 학교법인 영남학원 정관 1조에 '교주(校主) 박정희'라는 표현이 삽입된 사건<ref name="chung01"/>에 대해 "67년 영남대 설립 시 이사 전원이 서명한 결의문에 '교주 박정희'라는 글귀가 들어 있었다. 당시 이사 한 사람이 그것을 정관에도 넣자고 제의해 이사회에서 받아들인 것이다. 나도 이사회에 참여했고 찬성했던 것으로 기억한다.<ref name="chung01"/>"며 아무 문제 없다고 답했다.
 
한편 [[영남대학교]] 재단 재산 착복에 대한 의혹도 제기되었다 86년 당시 영남대학교 대학병원장 모씨의 해외출장비 명목으로 280여만원이 동생 지만씨의 항공료 등으로 지급됐고 병원장은 주치의 자격으로 박지만 씨와 미국에 함께 갔다.<ref name="chung01"/>는 의혹이 제기된다. 그에 대해 "그때는 몰랐지만 검증위 소명자료를 준비하면서 발견해 동생에게 알아 봤더니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ref name="chung01"/>"며 반박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영남대 병원장은 소환되지 않았다.
 
영남대 재단 비리에 [[육영재단]]을 끌어들이지 않았느냐는 의혹도 제기되어 왔다. '영남대 재단이 전액 출자한 영남투자금융회사는 육영재단이 발간하는 어린이 잡지 <보물섬> 등에 장기간 광고하고 광고비로 2,700여만원, 기부금도 1억3,000여만원 지급했는데 알고 있었느냐.<ref name="chung01"/>'는 질문에 대해서도 "육영재단이 공익재단이기 때문에 영남투자금융뿐 아니라 다른 데서도 기부금을 받을 수 있다. 영남투자금융에 강요한 적은 없다. 경영진에서 판단해서 한 것으로 안다.<ref name="chung01"/>" 또, 영남대 재단 4인방으로 거론되는 김모 조모 손모 곽모씨 등을 직접 임명하지 않았느냐<ref name="chung01"/>는 인사 의혹에 대해서도 "(자신은) 결재선상에 있지 않았다. K 전 총장이 확인서를 써 줬다고 하는데 이 사람은 이명박 캠프에서 정책자문단으로 일하고 대구 지역에서 사조직을 만들어 운영하는 분이다. 확인서가 신빙성 있는 자료인가 하는 의구심을 갖는다.<ref name="chung01"/>"며 결백함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영남대 재단 운영 과정에서의 의혹은 수시로 야당 인사들에 의한 공격 표적의 하나가 되고 있다. 한편 박근혜가 영남대 재단 이사장 시절 운영에 개입한 확인서를 제출한 [[김기택]] 전 [[영남대]] 총장은 박근혜로부터 [[이명박]] 당시 대통령 후보자 측 참모라는 역공을 받기도 했다.<ref name="choiui"/>
 
=== 정수장학회에 대한 의혹과 해명 ===
그가 한나라당 대표로 있을 때부터 '정수장학회 이사장 겸임때 탈세했다는 의혹<ref name="chung01"/>'도 줄곧 제기되어 왔다. 이에 대해 [[2007년]] 인사검증회에서 그는 '납세의무 있는지 몰라… 후에 퇴직금 정산해 납부했다.<ref name="chung01"/>'고 해명했다. '95~2005년 정수장학회 이사를 지냈으므로 강제 헌납에서 자유롭지 않다. 설립 당시 이런 문제 알았나.<ref name="chung01"/>'는 질문에 대해 그는 "당시 상황은 정확히는 모른다. 그러나 강제 헌납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사실이 아닌 것을 입증할 자료를 장학회가 가진 것으로 안다.<ref name="chung01"/>"고 해명했다.
 
또한 '적절한 시기에 재단 운영과 관련해 국가 헌납 등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용의가 있나.<ref name="chung01"/>'는 질의가 있었으나 그는 "공익재단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할 입장 안 된다. 이사회가 결정할 문제다.<ref name="chung01"/>"라며 이사회가 처리할 문제라는 말을 했다.
 
정수장학회 이사장 겸임 때의 섭외비 탈루 의혹도 제기되어왔다. '수억 원의 섭외비에 대한 세금을 탈세했다는 보도가 나오자<ref name="chung01"/> 그는 "매년 감독 관청에 보고했으나 세금 의무가 있는지 몰랐다. 법이 바뀌어 소득세를 내야 했으나 실무진이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누락됐다. 퇴직금을 중간 정산해 납부했다.<ref name="chung01"/>"고 해명했다. 98년 국회의원 당선 이후 그는 [[정수장학회]]의 이사장 및 비상근 이사를 역임하기도 했다.<ref name="chung01"/> 그러나 이때 급여를 받아 횡령이라는 주장이 나온다.<ref name="chung01"/> 그는 "출근을 안 한 게 아니라 일주일에 2, 3번 가서 결재했고, 행사가 있으면 가는 등 이사장 일을 다 했다. 횡령은 동의할 수 없다.<ref name="chung01"/>'고 해명했고, 법원에서 이에 대한 조사결과, 박근혜가 옳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 5.16에 대한 관점 ===
[[5.16 군사 정변]]의 주역이던 [[박정희]]의 차녀였으므로 그가 [[5.16]]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은 그가 정계 입문한 [[1988년]] 이후 줄곧 이슈가 되어 왔다.
 
2007년 7월의 한나라당 인사청문회에서 그는 '박 전 대통령 유지 계승' 역사의식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ref name="chung01"/> 이때에도 그는 5·16은 구국의 혁명…유신은 역사가 판단할 일.<ref name="chung01"/>이라며 판단유보 자세를 취하였다. 이 때문에 야당 인사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90년 잡지 인터뷰에서 5ㆍ16과 4ㆍ19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 박 전 대통령의 뜻을 계승하는 것이라고 했다. 역사의식에 의문이 드는데.<ref name="chung01"/>라는 의혹이 제기되자 그는 5.16을 구국의 혁명이라고 본다는 시각을 피력하였다. 그에 의하면 "5ㆍ16은 구국(救國)의 혁명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때 상황이 너무나 혼란스러웠고 남북대치 상황에서 잘못하면 북한에 흡수될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 혁명 공약에도 기아 선상에 헤매는 국민을 구제한다는 얘기가 나온다.<ref name="chung01"/>"는 것이다. 다만 [[10월 유신]]에 대해서는 판단유보를 내렸다. 5.16 뒤의 유신시대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ref name="chung01"/>는 질문에 "역사에 판단을 맡겨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다만 유신시대에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헌신하고 고통받은 분들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항상 죄송하게 생각한다.<ref name="chung01"/>"고 답했다.
 
한편 2012년 7월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박근혜의 5ㆍ16의 역사관에 대한 논란이 또다시 불거졌다.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박근혜는 "5.16은 당시 상황에서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말해 과거 '구국(救國)의 혁명' 발언 당시의 생각과 변함이 없음을 표명함하였고 이후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 합동 토론회에서 오마이뉴스의 여론조사를 인용<ref>[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20719103711982] 장윤선 기자, "박근혜 5·16 발언에 공감" 52.5%, 오마이뉴스, 2012.7.19.</ref>해 "제 발언에 찬성하는 분이 50%를 넘었다"고 하면서 사회적으로도 5ㆍ16 찬반 논쟁을 일게 했다. 그러나 박근혜를 칠푼이라 비하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 상황을 빗대 "박근혜, 대통령 되기엔 결격사유 있다"며 혹평<ref>[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20717083406324]김현 기자, YS "박근혜, 대통령 되기엔 결격사유 있다", 데일리안, 2012.7.17.</ref>했으며, 박근혜가 언급한 것과 반대의 여론조사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ref>[http://www.dailia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357]</ref><ref>[http://newslink.media.daum.net/news/20120725150611661]</ref><ref>[http://newslink.media.daum.net/news/20120725161212075]</ref> 박근혜의 대선후보 지지율은 다소 하락하면서<ref>[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89218] 박정엽 기자, 안철수 48.4%, 박근혜 46.4%, 뷰스앤뷰스, 2012.7.29.</ref> 박근혜는 "5·16은 정상적인 게 아니다"며 다소 입장을 바꾸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토론회에서 임태희 후보의 5·16 관련 질문에 "과거에 묻혀 사시네요"라며 반박하는 등<ref name="경향신문 디지털뉴스팀">[http://newslink.media.daum.net/news/20120808161916193]디지털뉴스팀, 박근혜, 5·16 질문 받자 “과거에 묻혀 사시네…”, 경향신문, 2012.8.8. </ref> 아직도 입장표명에 아리송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근혜의 5·16 역사관에 대한 논란은 대통령 선거일까지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복귀 당시 2억원 수수 의혹과 사실 ===
2004년 2월 대선자금 수사에서 박 전 대표가 복당과정에서 2억원을 수수한 사실이 드러났고, 이 돈이 복당의 대가인지 의혹<ref name="chung01"/>이 제기되었다. 그는 이것을 선거활동비 명목이라고 해명하였다. 그에 의하면 '당에 들어올 때 중앙선대위 의장을 맡았는데 당 사무총장으로부터 2002년 11월 26일과 12월 7일 1억원씩을 선거활동비 명목으로 받았다. 한나라당 입당 조건으로 받은 것 아니다. 미래연합을 운영하면서 빚진 것 있었지만 이 돈에는 전혀 손대지 않았다.<ref name="chung01"/>'라고 해명했다.
 
== 비판 및 논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