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파형동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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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 한국의 역사학계에서는 미송리형토기와 함께 고조선의 표지유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비파형동검이 출토되는 지역이 모두 고조선의 영역 혹은 영향권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세간에는 비파형동검이 출토되는 지역은 모두 고조선의 영역으로 보는 시각이 퍼져 있으나 실제 비파형동검의 형식도 다양하고 공반 유물을 통해서도 랴오시(요서) 일대의 비파형동검 문화와 랴오둥(요동) 일대의 비파형동검 문화가 차이를 보이고 있는 등 엇갈린 인식이라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ref>송호정, 〈중국 내몽고 및 요서 지역 답사를 통해 본 한국 고대문화〉, 청람사학 제6집, 2002</ref> 일반적으로 미송리형토기, 탁자식 [[고인돌]] 등이 공반되는 경우에 [[고조선]]의 영향권에 속한다고 보며, 그 이외의 비파형동검은 [[동호족]](산융족) 등의 문화로 본다. 다만 학자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동호족]](산융족)이 [[고조선]]의 철기문화를 가지고 남쪽으로 흘러들어 [[신라]]를 건국하였다는 설이 나오는 가운데 [[백제]]는 [[고구려]]의 주체 세력이 분파되어 세운 나라이므로 [[고구려]]·[[백제]]·[[신라]]는 모두 [[고조선]]의 후예로 [[단군조선]]의 전통을 잇고 있다는 설로 대체적인 견해를 함께 하고 있다.
 
최근까지 [[한반도]]에서는 [[고인돌]]에서 출토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왔는데, [[전라남도]] [[보성강]]유역과 [[여수]]반도의 남방식(南方式) [[고인돌]]에서 수 점의 비파형동검이 출토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비파형동검은 그 숫자도 얼마 되지 않아서 [[중국]] 세형동검의 이형(異形)에 지나지 않고, 전형적인 세형동검보다 늦은 형식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중국]] 차오양(朝陽, 朝阳) 쓰얼타이잉즈(十二台營子)에서 한반도 세형동검과 잔무늬거울의 조형(祖形)으로 보이는 비파형동검과 거친무늬거울(粗文鏡)이 출토되고 제작시기가 앞선 문화로 확인되면서 [[경기도]] [[광주]], [[충청남도]] [[부여]] 송국리 유적 등 한반도 여러 곳에서 비파형동검이 발견과 함께 명실공히 [[중국]] 세형동검에 앞서는 [[한반도]]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동검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ref>{{뉴스 인용|url=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001/h2010011821560886330.htm|제목=한반도 최대 규모 비파형 동검 '햇빛' 전남 여수 고인돌 유적서 길이 43.4cm 발굴|언어=한국어|이름=김지원기자|작성일자=2010-01-18|출판사=한국일보|확인일자=2012-07-20}}</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4721349|제목=비파형동검 묻은 청동기 석곽묘 발굴|언어=한국어|이름=김태식 기자|작성일자=2010-10-22|출판사=연합뉴스(네이버)|확인일자=2012-07-20}}</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