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시오스 1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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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등극과 집권 초기: 한자어에는 사이시옷을 적지 않음이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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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요한네스 콤네노스와 안나 달라세나의 아들이었고 [[이사키우스 1세]]의 조카였다. 알렉시오스는 비잔티움의 유력한 가문 출신으로 젊은 시기부터 무용으로 이름을 날렸다. 당시 비잔티움 제국은 [[1071년]] [[만지케르트 전투]] 이후 걷잡을 수 없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1071년]] 부터 [[1081년]]까지 [[로마누스 4세]], [[미카일 7세]], [[니케포루스 3세]]로 이어지는 혼란기에 그는 유능한 군사활동으로 젊은 장군으로 이름을 날렸다. 두터운 [[콘스탄티노폴리스]] 민중의 신임을 바탕으로 어머니 [[안나 달라세나]], 부인 [[이레네 두카스|이레네]]의 가문인 막강한 두카스 가문의 지원을 얻어 무능한 전임 황제 니케포루스 3세에게서 [[1081년]] 24살의 나이로 제위를 빼앗는 데 성공했다.
 
즉위 직후 그는 여러 차례 외부의 침입에 직면했다. 맨처음으로 제국을 위협한 것은 [[이탈리아]] 남부의 [[노르만족]]이었다. [[1081년]] [[로베르토 기스카르]]가 이끄는 노르만족은 [[일리리아]] 속주의 수도인 두라초(오늘날의 [[알바니아]]의 [[두러스]])를 침략했다. 알렉시오스는 즉각 [[베네치아 공화국]]에 도움을 요청하는 한편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4세]]에게 [[이탈리아]]를 침공하게 했다. 알렉시오스는 몇 차례 전투에서 로베르트에게 패했으나 베네치아 해군의 도움으로 결국 노르만족의 침략을 물리칠 수 있었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이 승리의 댓가로대가로 비잔티움 제국 내에서의 광범위한 무역 특권을 얻었다.
 
=== 외부의 침입의 격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