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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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2 = '''[[추축국]]''' <br />{{국기나라|나치 독일}} <br />{{국기나라|일본 제국}} <br />{{국기나라|이탈리아 왕국}} <br />{{국기그림|프랑스|비시}} [[비시 프랑스]]<ref group=nb>비시 프랑스는 사실상 나치 독일의 [[괴뢰 정부]]로 나치에 협조한 것 때문에 [[추축국]]으로 분류한다.</ref> <br />{{국기그림|헝가리|1940}} [[헝가리 왕국]] <br />{{국기그림|루마니아}} [[루마니아 왕국]]<ref group=nb>1944년부터는 연합국</ref> <br />{{국기그림|불가리아}} [[불가리아 왕국]]<ref group=nb>1944년부터 중립국</ref> <br />{{국기나라|타이}}<ref group=nb>1945년부터 추축국에서 탈퇴</ref> <br />[[파일:Flag of Croatia Ustasa.svg|22px]] [[크로아티아 독립국]] <br />{{국기나라|만주국}} <br />{{국기나라|몽강국}} <br />{{국기나라|슬로바키아|1938}} <br />{{국기그림|이탈리아 사회주의 공화국}}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br />{{국기나라|핀란드}}<ref group=nb>핀란드는 [[겨울 전쟁]]과 [[계속 전쟁]]에 참여하여 보통 추축국으로 분류한다.</ref> <br />{{국기나라|이라크|1924}}<ref group=nb>[[영국-이라크 전쟁]]문서 참조.</ref> <br />[[추축국|그 외...]]
 
|지휘관1 = [[파일:US flag 48 stars.svg|22x20px|border]]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사 (KIA)|†]]?<br />{{국기그림|영국}} [[윈스턴 처칠]] <br />{{국기그림|소련}} [[이오시프 스탈린]] <br />[[제2차 세계 대전 기간의 지휘관 목록|그 외...]]
|지휘관2 = {{국기그림|나치 독일}} [[아돌프 히틀러]] [[전사 (KIA)|†]]<br />{{국기그림|이탈리아|1861}} [[베니토 무솔리니]] [[전사 (KIA)|†]]?<br />{{국기그림|일본 제국}} [[쇼와 천황|히로히토]]<br />[[제2차 세계 대전 기간의 지휘관 목록|그 외...]]
 
|병력1 =
}}
 
'''제2차 세계 대전'''([[한자]]: 第二次世界大戰, {{llang|en|Second World War}} 또는 {{lang|en|World War II}})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남긴 가장 파괴적인 전쟁이다[[전쟁]]이다. 통상적으로 전쟁이 시작된 때는 [[1939년]] [[9월 1일]] 새벽 4시 45분 [[나치 독일]]군이 [[폴란드]]의 서쪽 국경을 침공하고,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군이 [[1939년]] [[9월 17일]] 폴란드의 동쪽 국경을 침공한 것이라고 본다. 한 편에선 [[1937년]] [[7월 7일]] [[일본 제국]]의 [[중화민국]] 침략, [[1939년]] 3월 나치 독일군의 [[프라하 진주]] 등을 개전일로 보기도 한다. [[1945년]] [[8월 6일]]과 [[8월 9일]], [[일본 제국]] [[히로시마 시]]와 [[나가사키 시]]에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 이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일본 제국이 무조건 항복하면서항복]]하면서 사실상 끝이 났으며, [[일본 제국이제국]]이 항복 문서에 서명한 9월 2일에 공식적으로 끝났다. 이 결과로 [[동아시아]]의 일본의 식민지로 남아 있던 지역들이 독립하거나 모국으로 복귀하고, 그 외에도 여러 제국들의 식민지가 독립하게 되었다.
 
전사자는 약 2,500만 명이고, 민간인 희생자도 약 3천만 명에 달했다. 전쟁 기간 중 일본은[[일본 제국]]은 [[1937년]] 중국 침략 때 난징 등에서 [[난징 대학살|대학살]]을 감행, 겁탈과 방화를 일삼으며 수십만 난징 시민을 무자비하게 살해하고, 1938년부터[[1938년]]부터 여러 나라의 여성을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하였으며, 독일은[[나치 독일]]은 ‘[[민족청소|인종 청소]]’라는 이유로 수백만 명 이상의 [[유대인]]과 [[집시]]를 학살하였다. 그리고 독일은 더 나아가 유럽 거의 대부분을 점령했고 소련까지도[[소련]]까지도 저 멀리 쫓아냈으며 영국까지도[[영국]]까지도 총공격을 개시했지만 끝내 실패했다. 또한 미국은[[미국]]은 [[1945년]] [[3월 10일]] 일본의[[일본]]의 수도 [[도쿄]]와 그 주변 수도권 일대를 대규모로 폭격한 이른바 [[도쿄 대공습]]을 감행해 15만 명을 살상했고, 같은 해 8월 6일과 9일에 각각 [[히로시마 시|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시|나가사키]]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 폭탄 투하|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 공격]]을 감행하여 약 34만 명을 살상하였고, 영국공군과[[영국]]공군과 [[미국]] 육군항공대는 [[드레스덴 폭격|드레스덴]]과 [[뮌헨 공습|뮌헨]] 공습을 감행하여 각각 20여만 명을 살상하는 등, 전쟁과[[전쟁]]과는 상관없는 민간인들의[[민간인]]들의 피해도 매우 심했었다.
 
전쟁은[[전쟁]]은 크게 [[서부 전선 (제2차 세계 대전)|서부 유럽 전선]], [[동부 전선 (제2차 세계 대전)|동부 유럽 전선]]과 [[중일 전쟁]]·[[태평양 전쟁|태평양 전선]]으로 구분할 수 있다.
 
== 연표 ==
{{참조|제2차 세계 대전 연표}}
개전일은 일반적으로 [[1939년]] [[9월 1일]] [[폴란드 침공|독일의 폴란드 침공]]과 이틀 후 영국과[[영국]]과 프랑스의[[프랑스]]의 선전 포고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개전일의 또 다른 해석으로는 [[중일 전쟁]]의 시작인 [[1937년]] [[7월 7일로7일]]로 보기도 한다.<ref>{{Cite book|first=Roger|last=Chickering|title=A World at Total War: Global Conflict and the Politics of Destruction, 1937–1945|page=64|url=http://books.google.com/?id=evVPoSwqrG4C|isbn=0-275-98710-8|publisher=Cambridge University Press|year=2006 }}</ref><ref>{{Cite book|last=Fiscus|first=James W|title=Critical Perspectives on World War II|page=44|url=http://books.google.com/?id=6MTcnkLfDZAC|publisher=Rosen Publishing Group|isbn=1-4042-0065-7|year=2007}}</ref>
 
기타 다른 시작으로는, 영국의 역사학자인 [[A. J. P. 테일러]]는 중일전쟁와[[중일 전쟁]]와 [[유럽]] 및 그 식민지들의 두 전쟁이[[전쟁]]이 합쳐지는 1941년을[[1941년]]을 보기도 한다. 때로는,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이 시작된 [[1935년]] [[10월 3일을3일]]을 개전일로 본다.<ref>Ben-Horin, Eliahu (1943). ''The Middle East: Crossroads of History''. W. W. Norton & Co. p. 169; [[A. J. P. Taylor|Taylor, A. J. P]] (1979). ''How Wars Begin''. Hamilton. p. 124. ISBN 0-241-10017-8; Yisreelit, Hevrah Mizrahit (1965). ''Asian and African Studies'', p. 191. For 1941 see Taylor, A. J. P (1961). ''The Origins of the Second World War''. Hamilton. p. vii; Kellogg, William O (2003). ''American History the Easy Way''. Barron's Educational Series. p. 236 ISBN 0-7641-1973-7. There also exists the viewpoint that both World War&nbsp;I and World War&nbsp;II are part of the same "European Civil War" or "Second Thirty Years War": Canfora, Luciano; Jones, Simon (2006). ''Democracy in Europe: A History of an Ideology''. Wiley-Blackwell. p. 155. ISBN 1-4051-1131-3; Prin, Gwyn (2002). ''The Heart of War: On Power, Conflict and Obligation in the Twenty-First Century''. Routledge. p. 11. ISBN 0-415-36960-6.</ref> 이 문서에서는 기존의 학설인 [[1939년]] [[9월 1일을1일]]을 개전일로 정한다.
 
종전일의 정확한 날짜도 합의되지 않았다. 이는 일본의[[일본 제국]]의 공식적인 항복일인 [[1945년]] [[9월 2일보다는2일]]보다는, [[휴전 협정]]을 채결([[대일전 승전기념일]])한 [[1945년]] [[8월 14일을14일]]을 종전일로 보기 때문이고, 일부 유럽에서는 [[유럽에서의 승리의 날]]인 1945년[1[945년]] [[5월 8일로8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1951년까지[[1951년]]까지 체결되지 않고,<ref>{{Cite book|first=Shiraishi|last=Masaya|title=Japanese relations with Vietnam, 1951–1987|publisher=SEAP Publications|year=1990|isbn=0-87727-122-4|page=4}}</ref> [[독일에 관한 최종 합의 강화조약]]은 1990년 동서독 합병까지 체결되지 아니하였다.ref>{{cite web|url=http://usa.usembassy.de/etexts/2plusfour8994e.htm|title=German-American Relations – Treaty on the Final Settlement with Respect to Germany (two plus four)|publisher=Usa.usembassy.de|accessdate=29 January 2012}}</ref>
 
== 배경 ==
{{본문|제2차 세계 대전의 원인}}
[[제1차 세계 대전은대전]]은 크게 정치지도를 변경시켰는데, [[독일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만 제국]]을 포함하여 [[동맹국]]의 패배와 1917년 [[러시아 제국]]에서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났다. 한편,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그리스]], [[루마니아]] 같은 기존의 연합국은[[연합국]]은 영토를 얻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만 제국, 러시아 제국은 붕괴하여 멸망했다.
 
[[평화주의|태평양 운동]]에도 불구하고, [[제1차 세계 대전의 영향]]으로 인해<ref>{{cite web|last=Derby|first=Mark|title=Conscription, conscientious objection and pacifism|url=http://www.teara.govt.nz/en/conscription-conscientious-objection-and-pacifism/3|publisher=Te Ara|accessdate=22 June 2012|quote="The move towards world war in 1914 sparked an upsurge in pacifist movements"}}</ref><ref>{{cite web|title=Pacifism in the Twentieth Century|url=http://www.infoplease.com/ce6/society/A0860192.html|work="pacifism"|publisher=Columbia Electronic Encyclopedia|accessdate=22 June 2012|quote="During the 1920s and early 30s pacifism enjoyed an upsurge"}}</ref> [[민족 통일주의|민족 통일주의자]]와 [[보복주의|보복주의자]]들에게 민족주의는 유럽에서[[유럽]]에서 중요한 요소로 꼽히게 되었다. 민족 통일주의와 보복주의 때문에 [[베르샤유 조약]]에서 독일은 중대한 영토, 식민지,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되었다. 조약에 따라 독일은 본토의 13%의 손실과 [[독일 식민지 제국|독일 제국]]의 식민지를 모두 잃고, 독일 민족 영토의 합병은 금지되었고 배상금이 부과되며 군사의 양과 역량은 제한되었다.<ref>{{Harvnb|Kantowicz|1999|p=149}}</ref> 한편, [[적백 내전]]에서 볼셰비키가 승리하며 [[소련]]이 탄생하였다.<ref>{{Harvnb|Davies|2008|pp=134–140}}</ref>
 
[[독일 11월 혁명]]으로 인해 [[독일 제국이제국]]이 해산한 후, 민족주의 정부인 [[바이마르 공화국]]이 들어서게 된다. 1제1,2차 대전세계 대전의 사이 기간 동안, 새로운 공화국에서는 [[우익]]과 [[좌익]]의 정치 대립이 심해지고 있었다. 협상국인 이탈리아는[[이탈리아]]는 약간의 영토 획득은 있었지만, 이탈리아 민족주의자들은 [[런던 조약 (1915년)|런던 조약]]에서 약속했던 영토를 주지 않자 영국과[[영국]]과 프랑스의[[프랑스]]의 반대 감정이 심해지게 되었다. 1922년부터[[1922년]]부터 1925년까지[[1925년]]까지, [[베니토 무솔리니]]가 이끄는 [[이탈리아 파시즘|파시스트]]는 민주주의를 폐기하고 전체주의자, 국가주의자, 고위 협력자들을 장악하고 사회주의자, 우익과 자유주의자는 억압하며 세계적으로는 [[이탈리아 제국]]으로 공격적인 외교 정책을 추구했다.<ref>{{Harvnb|Shaw|2000|p=35}}</ref> 독일에서는, [[아돌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당]]이 독일 파시스트 정부를 수립했다. [[세계 대공황]]으로 인해, 나치당의 지지도는 올라가고 1933년에는 히틀러가 독일의 수상에 임명되었다.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 이후, 히틀러는 나치당이 이끄는 전체주의 국가을 만들었다.<ref>{{harvnb|Bullock|1962|p=265}}</ref>
 
[[중국 국민당]](KMT)은 1920년대 중반 [[북벌 (국민당)|북벌]]을 시작하며 지역 군벌의 토벌과 통일 중국을 목표로 하지만, [[중국 공산당]]과의 대립으로 인해 [[국공 내전]]이 시작된다.<ref>{{harvnb|Preston|1998|p=104}}</ref> 1931년, [[쇼와 일본 군국주의-사회주의|점점 군국주의]]로 치달으는 [[일본 제국]]은 계속 중국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나,<ref>{{harvnb|Myers|1987|p=458}}</ref> 일본 정부의 [[팔굉일우|아시아 지역 지배]]의 첫 단계로, [[만주 사변]]을 구실로 [[일본의 만주 침공|만주를 침공]]하며 [[괴뢰국]]인 [[만주국]]을 세웠다.<ref name=Mukden>{{harvnb|Smith|2004|p=28}}</ref> 일본에게 저항을 할 수 없었던 중국은 [[국제 연맹]]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국제연맹이 [[리튼 보고서]]를 발표하자, 일본은 국제연맹을 탈퇴한다. 1933년 동안, [[제1차 상하이 사변|하북성]], [[만리장성 방어전|만리장성]]과 [[러허 성 전투|러허성]]으로 간간히 전투하며 [[탄구 평화 협정]]을 맺었다. 이후, 중국 자원군 세력은 [[만주국 저항전]]과 [[내몽골 저항전 (1933-1936년)|내몽골 저항전]]으로 계속 전투를 이어갔다.<ref>{{Cite journal|title=The Volunteer Armies of Northeast China|url=http://www.questia.com/googleScholar.qst?docId=5000186948|first=Anthony|last=Coogan|journal=History Today|volume=43|date=July 1993|accessdate=14 November 2009|quote=Although some Chinese troops in the Northeast managed to retreat south, others were trapped by the advancing Japanese Army and were faced with the choice of resistance in defiance of orders, or surrender. A few commanders submitted, receiving high office in the puppet government, but others took up arms against the invader. The forces they commanded were the first of the volunteer armies}}</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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