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총재정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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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세권은 행정권과 별도로 6명의 회계관에게 맡겨졌다. 회계관은 총재의 명령을 받지 않는 독립기관이었다. 기타, 신교의 자유, 언론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었다. 한편, 집회의 자유는 인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개인, 단체 모두에게 정부에 탄원서 제출을 인정받았다. 또한 성직자 중에는 헌법과 하느님에 함께 충성을 맹세하는 모순점이 있었고, 헌법에 선서를 거부하는 ​​성직자(기피 성직자)도 많이 나왔다. 이러한 기피 성직자의 인권은 제한되었다.
 
==총재 정부총재정부==
새 헌법 하에 첫 선거가 [[1795년]] [[10월 20일]] 실시되어, [[10월 26일]] [[국민 공회]]는 해산되고, [[10월 31일]]에 총재가 선출되었다. 최초의 총재로 선출된 5인은 장 프랑수아 루벨, [[폴 바라스]], 라 루베리에르-라포, 라자르 카르노, 르 투르누였다.
 
바라스는 귀족 출신이지만 나머지 4명은 부르주아 출신이었다. 루벨, 바라스, 라 루베리에르의 사상은 자코뱅파에 가까운 급격한 개혁을 좋아했다. 한편, 카르노와 르 투르누는 급격한 개혁을 좋아하지 않았다.
 
총재 정부의총재정부의 성립으로 [[프랑스 혁명]]은 끝난 것처럼 보였다. 망명중인 [[루이 18세]]와 [[구체제]]의 부활을 바라는 국민은 적었고, 반대로 [[공포 정치]]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총재 정부의 중도 노선은 지지를 받았다. 국민은 혁명의 상처를 치유하는 국면을 바라고 있었다.
 
총재정부는 [[1795년]] [[11월]]부터 [[1799년]] [[11월]]까지 3년 동안 존속했으며, [[입법]]원(Corps Législatif)이라 불리던 [[양원제]] 의회기구를 갖추고 있었다. 하원인 [[오백인회]](Conseil de Cinq-Cents)는 30세 이상의 500명 의원으로 구성되어 입법을 건의하는 기구였다. [[원로회의 (프랑스 총재정부)|원로회의]](Conseil des Anciens)은 40세 이상 의원 250명으로 구성되며 이들은 제출된 입법안을 통과, 또는 거부할 권한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