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연 (양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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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국연'''(麴演, ? ~ 220년)은 중국 삼국 시대의 무장 · 군벌이다. 서평군 일대를 거점으로 할거하다 소칙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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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 군벌 [[한수]]는 [[184년]] 조정에 반기를 든 이래 30여년 간 중앙 정부와 반목했으나, [[동관 전투]]에서 지고서 세력이 약해졌다. [[건안]] 20년([[215년]]), 국연은 인근 금성군에서 할거하는 장군 장석(蔣石) 등과 함께 한수를 죽여 그 머리를 [[조조]]에게 보냈다.<ref name="s01">[[진수 (서진)|진수]] : 《[[삼국지]]》 권1 무제기</ref>
 
이후 [[우웨이|무위]]군의 안준(顔俊), 장액군의 화난(和鸞), 주천군의 [[황화]](黃華) 등과 나란히 반기를 들었다가 서로 싸웠다. [[조조]]가 죽자 그 틈을 노려 반란을 일으키고 호강교위(護羌校尉)를 자칭했으나 금성태수 [[소칙]]의 공격을 받고 항복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이웃 군의 장군들과 연계하여 난을 일으키고자 했고, 문제 [[조비]]가 황제로 즉위하여 옹주의 몇 군을 떼어 새로 양주를 설치하고 안정태수 추기를 자사로 파견하자, 장액군의 장진(張進)이 이에 반발해 장액태수 두통을 사로잡고 들고일어났으며 국연도 황화와 함께 태수를 쫓아내고 이에 호응했다. 그러자 무위의 세 종족도 반란을 일으켰다. 당시 양주의 관료인 무위태수 관구흥은 중앙에서 부름을 받았고, 장군 [[학소]], 위평도 조서를함부로 받아이들을 서쪽으로토벌하러 출병하기출진하지 어려운 처지였다못했다.<ref name="s15">위와 같음, 권15 유사마양장온가전</ref><ref name="s16">위와 같음, 권16 임소두정창전</ref>
 
그러나 소칙의 설득으로 인해 이들은 일단 국연 등의 반란을 먼저 토벌하고자 움직여 우선 무위를 공격하여 세 종족의 항복을 받아내고 장진을 쳤다. 국연은 군사 3천을 학소에게 보내 도와주는 척하면서 변을 일으키려 했으나, 소칙에게 꼬드김을 당해 살해당했다.<ref name="s16"/> 이후 토벌군은 장진을 죽이고 황화의 항복을 받아내 일단 안정시켰으나,<ref name="s16"/> 최종적으로는 결국 자사를 [[장기 (조위)|장기]]로 교체해야 했다.<ref name="s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