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바탄 행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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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Bataan Death March route.PNG|thumb|250px|바탄 죽음의 행진 경로]]
'''바탄 죽음의 행진'''(-行進, {{llang|en|Bataan Death March}}, {{llang|tl|Martsa ng Kamatayan sa Bataan}}, {{llang|ja|バターン{{ruby|死|し}}の{{ruby|行進|こうしん}}}})은 [[태평양 전쟁]] 초기에 [[일본]]군이 7만 명의 미군과 [[필리핀]]군 전쟁포로를 학대한 행위로, [[1942년]] [[4월 9일]] [[필리핀]] [[바탄 반도]] 남쪽 끝 [[마리벨레스]]에서 [[산페르난도]]까지 88km를 강제적로 행진하게 한 것이다. 산페르난도에서 [[카파스]]까지는 열차를 이용했다.
 
다시 [[카파스]]부터 [[오도넬 수용소]]까지 13km를 강제로 행진하였는데 전쟁 포로 70,000명이 행진 과정 중 구타, 굶주림 등을 당했고 낙오자는 [[총검]]으로 찔려 죽음을 당했다. 결국 7,000명~10,000명의 전쟁 포로들이 행진 도중에 사망했고 54,000명만 수용소에 도착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정글 속으로 도망쳤으며 이 책임으로 필리핀 침공작전을 계획한 사령관 [[혼마 마사하루]] 중장은 [[1946년]] [[4월 3일]] [[마닐라 군사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처형된다. 하지만 고의적 명령 왜곡으로 이 사태를 초래한 [[쓰지 마사노부]] 중좌는 처벌은커녕 전범으로 기소되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