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아이 히로미쓰: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SotialeBot (토론 | 기여)
6번째 줄:
|선수 사진 파일명 = Hiromitsu Ochiai.jpg
|사진 사이즈 = 250
|사진 설명 = 오치아이 히로미쓰<br />(주니치 드래곤스드래건스 감독 시절, 2007년)
|국적 = {{JPN}}
|출신지 = [[아키타 현]] [[미나미아키타 군]] 와카미 정<br />(현 : [[오가 시]])
27번째 줄:
* [[:ja:東芝硬式野球部|도시바 후추]]
* [[지바 롯데 마린스|롯데 오리온스]](1979 ~ 1986)
* [[주니치 드래곤스드래건스]](1987 ~ 1993)
* [[요미우리 자이언츠]](1994 ~ 1996)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닛폰햄 파이터스]](1997 ~ 1998)
'''감독 경력'''
* [[주니치 드래곤스드래건스]](2004 ~ 2011)
|선출국 = 일본
|선출년 = [[2011년]]
66번째 줄:
입단 초에는 스프링 캠프에 있던 야구 평론가들은 모두 오치아이의 타격폼에 대한 혹평을 내렸는데 특히 전임 감독이던 [[가네다 마사이치]]는 오치아이의 타격폼을 혹평했다. 오치아이는 이 때의 생각을 “만약 고교 출신의 젊은 선수가 프로에 들어가면서 저렇게 훌륭한 사람으로부터 갑자기 말해지면 무너졌을 것이다” 라고 종종 말했다. 이 일은 후에 가네다가 회장을 맡고 있던 [[일본 프로 야구 명구회]]의 가입을 거부한 원인이 되면서 입단 2년차 때에는 “장래에 비록 2000개의 안타를 쳤다고 해도 명구회에는 들어가지 않겠다”라고 단언했다.<ref name="명구회">[[일본 프로 야구 명구회]]의 가입 조건은 투수는 통산 200승 이상, 구원 투수는 통산 250[[세이브]] 이상, 타자는 통산 2000[[안타]] 이상을 기록하면 가입이 가능하지만, 1995년 4월 15일에 [[도쿄 돔]]에서 열린 [[한신 타이거스]]전에 출전하면서 통산 2000안타를 기록한 오치아이 본인은 프로 입단 초기에 자신의 배팅 폼을 [[가네다 마사이치]]를 포함한 일부 명구회 회원들로부터 혹평을 받은 것과 관련해 기록된 숫자만으로 판단하는 것이 이상하다는 의구심을 느껴 가입을 거부했다. 이것은 지금도 그의 명구회 입회 자격있는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ref>
 
입단 2년째인 1980년, 2군에서 조정하던 중에 [[에가와 스구루]]로부터 홈런을 기록했고 이후 5경기 연속 홈런을 때려내 [[이스턴 리그 (일본)|이스턴 리그]]에서의 신기록을 만들었다. 그리고 시즌 후반기에는 1군에 복귀하면서 57경기에 출전해 15개의 홈런을 날리는 등 팀의 주전을 차지했다. 같은 해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스버펄로스|긴테쓰 버팔로스버펄로스]]와의 [[1980년 퍼시픽 리그 플레이오프|퍼시픽 리그 플레이오프]]에 출전하는 등 처음으로 포스트 시즌 출전을 경험했다.
 
이듬해 1981년에는 올스타전에 첫 출전을 하면서 당시 퍼시픽 리그 팀의 [[니시모토 유키오]] 감독에게서 “장래에 10년, 15년 후에 일본 프로 야구를 짊어질 선수다”라고 인정받아 선발에서는 4번 타자로 기용되었다. 정규 시즌에서는 처음으로 규정 타석을 채워 3할 2푼 6리의 시즌 최고 타율을 기록하는 등 프로 데뷔 첫 타이틀인 [[일본 프로 야구 수위 타자|수위타자]] 타이틀을 석권했다. [[아리토 미치요]], [[레온 리]], [[레론 리]] 등과 함께 클린업 타선을 이끌어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닛폰햄 파이터스]]와의 [[1981년 퍼시픽 리그 플레이오프|퍼시픽 리그 플레이오프]]에서는 4차전에서 홈런을 때려내 구단 역사상 마지막이 되는 포스트 시즌에서의 승리에 기여했다.
74번째 줄:
3년 후인 1985년에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통산 두 번째의 3관왕을 차지했는데(타율 3할 6푼 7리, 52홈런, 146타점) 타율 3할 6푼 7리는 당시 우타자로서 역대 최고 타율이며, 52홈런은 당시 퍼시픽 리그 타이 기록, 146타점은 현재까지도 퍼시픽 리그 기록이다. 또 그 해에 득점권 타율 4할 9푼 2리는 경이적인 성적을 기록했는데 이것은 현재까지도 일본 프로 야구 기록으로 남아있다.
 
1986년, 2년 연속으로 통산 세 번째의 3관왕을 차지(타율 3할 6푼, 50홈런, 116타점)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2년 연속 3관왕 달성은 일본 프로 야구계에서는 [[오 사다하루]](1973년 ~ 1974년), [[랜디 바스]](1985년 ~ 1986년), 오치아이 등 3명 뿐이고 통산 세 차례의 석권은 오치아이가 유일하다. 그 해에는 [[부머 웰스]]나 [[아키야마 고지]] 등을 상대로 시즌 중반까지 치열한 타이틀 경쟁을 펼쳤지만 최종적으로 오치아이가 타이틀 석권했다. 오치아이의 이해자인 [[이나오 가즈히사]]가 팀 성적 부진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나 “이나오가 없는 롯데에 자신은 있을 필요가 없다”라고 말했다. 시즌 종료 후 [[우시지마 가즈히코]], [[가미카와 세이지]], [[히라누마 사다하루]], [[구와타 시게루]] 등 4선수와의 1대 4 맞트레이드로 [[주니치 드래곤스드래건스]]에 이적했고 일본인 선수로서는 최초로 연봉 1억 엔을 돌파한 선수가 되었다.
 
==== 주니치 드래곤스드래건스 시절 ====
주니치 입단 첫 해인 1987년에는 2년 연속 3관왕을 차지한 선수로서 [[센트럴 리그]] 경기에 데뷔했지만 홈런과 타점 모두 과거 2년과는 다르게 급격히 떨어지면서 단 한 개의 타이틀도 없이 무관으로 그쳤다. 특히 [[시노즈카 가즈노리|시노즈카 도시오]], [[쇼다 고조]] 등과 수위타자 경쟁을 펼쳤지만 선두와의 2리 차로 리그 3위인 타율 3할 3푼 1리를 기록했다. 시즌 도중인 8월 20일에는 장남이 탄생했다.
 
88번째 줄:
[[나가시마 시게오]] 감독의 지휘 하에 팀의 두 차례 리그 우승을(1994년, 1996년) 달성하는데 기여하는 등 팀내 4번 타자로서 맹활약을 했다. 1995년에 개인 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지만 왕년에 프로 야구에서 활약했던 선수들의 사적 모임이자 간판급 선수들의 모임인 [[일본 프로 야구 명구회]] 가입을 거부했다.<ref name="명구회"></ref><ref>[http://www.sponichi.co.jp/baseball/special/calender/calender_09april/KFullNormal20090401166.html {{lang|ja|1995年 名球会目指してきたわけじゃない 落合博満、資格獲得も入会辞退}}] 스포니치.</ref> 41세 4개월에서의 2000안타 달성은 자신이 롯데 시절에 그 타격 기술에 경의를 표하고 있던 [[아라이 히로마사]]의 40세 2개월을 경신해 당시의 일본 프로 야구 사상 최고령 기록이 되었다(그 후 2012년 5월에 [[미야모토 신야]]가 41세 5개월을 기록하면서 오치아이의 기록을 경신했다).
 
이듬해 1996년, 일본 프로 야구 역사상 7번째인 통산 500호 홈런을 달성했고 역대 7번째의 기록인 통산 1500타점을 동시에 달성했다. 8월 31일 주니치 드래곤스전에서는드래건스전에서는 [[노구치 시게키]]로부터 사구를 받아 왼쪽 손목에 골절상을 입는 부상을 당했다. [[1996년 일본 시리즈|같은 해 일본 시리즈]]에서는 1차전부터 복귀했고 시즌 종료 후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세이부 라이온스]]에서 이적한 [[기요하라 가즈히로]]가 요미우리에 입단한 것의 영향으로 출전 기회를 요구하는 등 요미우리 구단에 자유 계약을 신청했다.
 
==== 닛폰햄 파이터스 시절 ====
96번째 줄:
 
=== 해설자·평론가 시절 ===
현역 은퇴한 이듬해 1999년부터는 야구 해설가로서 활동했고 1999년부터 2001년까지 [[TV 아사히]]의 야구 해설위원을 맡았다(캐치카피는 '''오레류 해설'''({{lang|ja|オレ流解説}})이었다). 그 이후에는 프리랜서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었지만 TV 아사히에 있을 당시부터 몸담고 있던 [[규슈 아사히 방송]]의 프로그램에서 종종 등장하기도 했다. 2001년 2월에는 [[모리 마사아키]]가 감독으로 있는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요코하마 베이스타스]]의 스프링 캠프에서 임시 타격 코치를 맡았다. 2003년 시즌 종료 후에는 [[야마다 히사시]]의 후임으로 주니치 드래곤스의드래건스의 차기 감독으로 부임했다(3년 계약).
 
=== 주니치 감독 시절 ===
131번째 줄:
=== 현역 은퇴 후의 발언 ===
* 2000년 시점에서 오치아이 본인이 현역에서 활약했을 당시의 기록에 대해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세 차례의 타격 3관왕과 2년 연속 50홈런 뿐이다”라고 말했다(당시 일본 프로 야구계에서는 유일한 기록이며, 2년 연속 50홈런 이상은 2002년과 2003년에 [[알렉스 카브레라]]도 달성했다).
* 주니치 드래곤스의드래건스의 감독으로 취임하고 나서는 “(프로 야구 구단은)이기는 것이 최대의 팬 서비스이다”라고 말했다.
* 2008년에 [[일본방송협회|NHK]]가 야구계의 재편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방송하면서 그 중심 인물의 한 명으로 다루기도 했다. 2004년 프로 야구 파업 사태가 일어나기 직전에 주니치의 선수 회장인 [[이바타 히로카즈]]를 불러 “선수회로서 철저하게 싸워 와라. 리그 우승이나 일본 시리즈가 없어져도 상관없다. 세상에는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있다”라고 발언했다.
 
146번째 줄:
야구계에서는 유일하게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를 좋아할 정도의 《건담》 열성팬으로 알려져 있어 그 때문에 건담과 관련되는 에피소드가 다수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모빌 슈트]]는 《[[신기동전기 건담W]]》에 등장하는 ‘윙 건담 제로’인데 2008년 1월 [[시즈오카 현]]에 있는 [[반다이 호비 센터]]를 방문해 주니치 드래곤스드래건스 팀의 색깔과 동일한 건담 엑시아를 선물 받았다. 2008년 오프 시즌에는 주니치가 우승을 놓쳤기 때문에 그의 장남인 오치아이 후쿠시로부터 ‘다음 시즌의 개막까지 건담 금지령’이 나와 당시 방송되고 있던 《[[기동전사 건담 00]]》 제2 시즌을 시청할 수 없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오치아이는 기분을 달래기 위해서 한때 《[[마크로스 프론티어|마크로스 F]]》에 마음이 들떠 있었다고 한다.
 
== 상세 정보 ==
159번째 줄:
;프로팀 경력
* [[지바 롯데 마린스|롯데 오리온스]](1979년 ~ 1986년)
* [[주니치 드래곤스드래건스]](1987년 ~ 1993년)
* [[요미우리 자이언츠]](1994년 ~ 1996년)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닛폰햄 파이터스]](1997년 ~ 1998년)
165번째 줄:
=== 지도자·기타 경력 ===
* [[TV 아사히]] 야구 해설위원(1999년 ~ 2001년)
* 주니치 드래곤스드래건스 감독(2004년 ~ 2011년)
 
=== 수상·타이틀 경력 ===
224번째 줄:
 
==== 기록 달성 경력 ====
* 통산 100홈런 : 1983년 8월 31일, 대 [[오릭스 버팔로스버펄로스|한큐 브레이브스]] 20차전([[한큐 니시노미야 스타디움|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9회초에 [[야마오키 유키히코]]로부터 좌월 선제 3점 홈런 ※역대 127번째.
* 통산 150홈런 : 1985년 5월 5일, 대 난카이 호크스 4차전(가와사키 구장), 5회말에 [[오쿠보 마나부]]로부터 ※역대 75번째.
* 통산 200홈런 : 1986년 5월 31일, 대 한큐 브레이브스 8차전(가와사키 구장), 2회말에 [[이마이 유타로]]로부터 중월 선제 솔로 홈런 ※역대 48번째.
289번째 줄:
|-
|style="text-align:center;"|[[1987년]]
|rowspan="7" style="text-align:center;"|[[주니치 드래곤스드래건스|주니치]]
|125||519||432||'''83'''||143||'''33'''||0||28||260||85||1||4||0||4||'''81'''||10||2||51||10||.331||'''.435'''||.602||'''1.037'''
|-
338번째 줄:
|-
|style="text-align: center;"|[[2004년]]
|rowspan="8" style="text-align:center;"|[[주니치 드래곤스드래건스|주니치]]
|1위||138||79||56||3||.585||(7.5)||111||.274||'''3.86'''||623||'''558'''||50세
|-
402번째 줄:
|[[2011년 일본 시리즈|일본 시리즈]]||[[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3승 4패
|}
* 2008년, 2009년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2스테이지에서는 센트럴 리그 우승 팀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게 1승 [[어드벤티지]], 2010년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2스테이지에서 명칭 변경)에서는 센트럴 리그 우승팀인 주니치 드래곤스에게드래건스에게 1승의 어드벤티지가 주어졌지만 여기에서 어드벤티지분은 제외한 승수를 나타냈다.
 
== 저서 ==
434번째 줄:
{{센트럴 리그 베스트 나인 (3루수)}}
{{일본 프로 야구 트리플 크라운}}
{{주니치 드래곤스드래건스 역대 감독|주니치 드래곤스드래건스|(2004년 ~ 2011년)}}
 
[[분류:1953년 태어남]]
442번째 줄:
[[분류:일본 프로 야구 3루수]]
[[분류:롯데 오리온스 선수]]
[[분류:주니치 드래곤스드래건스 선수]]
[[분류:요미우리 자이언츠 선수]]
[[분류:닛폰햄 파이터스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