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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일본의 옛 노래에 "에미시는 혼자서 백 명을 감당한다 해도 우리 군에는 반항도 못 한다네(えみしを 一人 百な人 人は言へども 手向かいもせず)"라는 것이 있고, 아스카 시대의 권신이었던 소가노 에미시처럼 고대 일본인의 이름에도 '에미시'라는 말이 사용된 바가 있다. '에미시'는 일본어로 '강하고 용감하다'는 어감이 있어 원래 나쁜 의미는 없었다고 한다. 이를 근거로(비록 직접 그 의미로 이용된 용례는 없기는 하지만) '에미시'의 본래 의미는 '시골(변경) 용사(촌뜨기 무사)'였지 않나 하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일본의 학자 긴다이치 쿄스케는 에미시라는 단어는 아이누어에 어원이 있다고 생각해, 사할린 아이누어의 아어에서 '인간'을 뜻하는 '엔츄엔추(enchu, enchiu)'라는 단어를 일본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에미시'가 되었거나 혹은 아이누어의 오래된 형태가 '에미시'였을 거라 추정했다.
 
어원에 대해서 현재까지 확고한 정설은 없다. 사할린 아이누어에서 인간을 의미하는 encu에서 왔다는 설이 있으며, 고대 문헌에는 毛人이라 쓰고 에미시, 또는 에비스라고 읽었다. 이는 한자의 뜻에 맞추어 일본어로 읽는 숙자용법인데, 체모가 많은 점에서 아이누족의 신체적 특징과 유사한 면이 있다. 또한 체모가 길다라는 뜻에서 새우(에비)를 빗대어 가리키는 말이라고도 한다. [[헤이안 시대]] 후기부터 주로 에조라고 부르게 되었다.
== 에조(중세 이후) ==
[[파일:Ainu man of Yezo Mongoloid.png|frame|[[아이누족]] 노인. 1906년.]]
중세 이후의 에조는 대부분 아이누족과 일치한다는 의견이 주류이다.(다만 중세의 에조는 아이누뿐 아니라 후에 카즈토和人로 여겨지는 와타리토우渡党도 포함된다.) [[가마쿠라 시대]] 후반(13세기~14세기) 무렵, 오늘날 아이누라 불리는 이들과 동일한 것으로 여겨지는 '에조'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문헌 사료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이누의 대부분이 모여 살았던 [[홋카이도]]는 에조가시마(蝦夷が島) 또는 에조치(蝦夷地) 등으로 불렸고, 서구권에서도 '예죠예조(Yezo)'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아이누 문화는 전대의 사츠몬 문화를 계승하면서 오호츠크 문화와 융합, 혼슈의 문화를 흡수하여 생성된 것으로 여겨지며, 그 성립 시기는 위에서 말한 '에조(えぞ)'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시기와 가까운 가마쿠라 후기(13세기)로 보인다. 또한 사츠몬 문화와 아이누 문화의 생활 체계상 가장 큰 차이는, 외부로부터의 이입품(특히 철제품)의 양적인 증대에 있었다. 아이누 문화는 교역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고, 아이누 문화의 탄생에 카즈토와의 교섭 증대도 한몫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구체적으로는 오슈 후지와라씨 세력의 성쇠와의 관련성이 지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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