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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9년]] [[세비야]]를 지배하던 무어인 왕에게 사절로 가 있던 그는 가르시아 오르도녜스와 불화를 일으키게 되었다. 오르도녜스는 그라나다 왕의 세비야 침략을 지원하고 있었다. 엘 시드는 세비야 근처의 카브라에서 훨씬 우세한 [[그라나다]]군을 격파하고 가르시아 오르도녜스를 사로잡았다.
 
이 승리가 그에게는 몰락의 첫걸음이었는데 1081년 그가 알폰소의 보호를 받고 있던 무어인의 왕국 [[톨레도]]를 무단으로 공격하자 알폰소 왕은 엘 시드를 카스티야에서 추방했다. 그후그 후 여러 차례 화해의 노력이 있었지만 그 성과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1081년 이래 엘 시드는 두번 다시 장기간 알폰소의 영토에 머물지 못하게 되었다.
 
=== 이슬람 교도에 대한 봉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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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6년 북아프리카의 [[무라비트 왕조]]가 대규모로 스페인을 침공하기 시작했다. [[10월 23일]] 사그라하스에서 참패를 당한 알폰소 6세는 엘 시드에 대한 적개심을 억누르고, 기독교도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장군인 엘 시드를 망명지로부터 불러들였다.
 
엘 시드가 [[1087년]] 7월에 알폰소의 궁정에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 직후에 그는 다시 사라고사로 돌아갔고, 그후그 후 스페인 내 기독교 왕국들의 존립을 위협하는 무라비트 왕조와의 전투가 여러 전략 요충지에서 치열하게 벌어졌지만 엘 시드는 어느 전투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엘 시드는 이제 부유한 무어 왕국인 발렌시아를 차지하기 위한 복잡하고 장기적인 정치적 책략에 착수했다.
 
=== 발렌시아 정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