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퍽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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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바운티 호의 반란]] 이후 반란 선원들은 타히티인들을 데려와 자급적인 생활을 꾸려갔으며, 선원들이 말하던 영어 방언에 타이티계 주민의 언어가 섞여서 핏케언 섬 독자적인 혼합어가 이루어졌다. 이후, 그들의 자손대에서는 이 언어가 모어화되었으며, 자손이 살던 핏케언 제도의 인구밀도가 지나치게 높아지자, [[1856년]] 영국정부는 주민의 일부를 노퍽섬에 이주시켰다. 그후그 후, 일부는 다시 핏케언 제도로 돌아갔으나, 노퍽섬에 그대로 정착한 그룹도 있었다. 이들이 노퍽섬의 주민으로서, 결국 바운틴호의 반란 선원의 후손이며, 핏케언 제도의 주민과 동계인 셈이다.
그러나 절해고도인 핏케언 섬에 견주어 볼 때, 노퍽섬은 오스트레일리아나 뉴질랜드에 비교적 가까웠기 때문에, 이들 나라에서 온 여행객의 방문과 접촉이 핏케언 섬보다 훨씬 많았고 그에 따라 노퍽어는 핏케언어와 동계임에도 훨씬 영어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그 결과 오늘날에는 두 언어사이의 의사소통이 어려울 정도로 달라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