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르 앗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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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1146년]] 아버지 장기가 암살된 후, 영토를 형과 분할해 시리아의 서쪽 절반을 얻어 [[알레포]]의 태수가 되었다. 이슬람 세력의 결집을 꾀해 [[셀주크 왕조]]의 여러 지방 정권과 동맹을 체결해 [[안티오키아 공국]]과 영지 탈환을 목표로 하던 [[에데사 백국]]과 싸웠다. [[1148년]] [[제2차 십자군]]이 원정해왔으나, 그들은 [[예루살렘 왕국]]과 친하던 [[다마스쿠스]]를 공격해 누르 앗딘과 다마스쿠스를 접근시키게 만들었다. 제2차 십자군이 성과를 얻지 못하고 철수한 후, 안티오키아 공국의 영토 대부분을 빼앗고 안티오키아의 공작 [[안티오키아의 레몽|레몽]]을 사로잡아 처형하였다. 그후그 후 에데사 백작도 사로잡아 누르 앗딘의 지배는 안정되었다. [[1154년]] 다마스쿠스도 장기 왕조의 지배하에 들어가 시리아의 대부분을 지배하였다. 1164년때부터 십자군 세력과 전투를 접고 [[비잔티움 제국|로마 제국의 황제]] [[마누엘 1세 콤네누스]]와 동맹을 맺고 [[룸 술탄국|셀주크 왕조]]의 술탄과 다툼을 벌였다.
 
[[아나톨리아]]의 [[룸 술탄국]]은 자신들이 셀주크 왕조의 정통을 이어받은 것이라 인정하지만 아나톨리아에 대한 지배의 정통성에는 의문을 갖고 있기에 계속해서 대립하고 있었다. 특히 [[킬리지 아르슬란 2세]]와는 즉위 당초부터 항상 주변 아타베그 정권인 셀주크 왕조계의 세력과 대(對)비잔티움 제국 정책등에서 대립하고 있었다. 킬리지 아르슬란이 동방진출을 기도하자 당시 시바스, 마라시, 말라티아등의 동 아나톨리아 일대를 영유하던 셀주크계 [[아미르]] 가계였던 [[다니슈멘드|다니슈멘드 가문]]을 둘러싸고 다툼을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