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에몽 1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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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에몽은 니케아, 도릴라이온, 안티오키아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였는데, 특히 안티오키아 포위전에서 안티오키아를 함락시킨 것도 보에몽이 변절자 [[피루즈]]와의 협상으로 안티오키아의 한 탑을 확보한 덕분이었다. 제1차 십자군의 성공은 그의 수완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정작 예루살렘 공략에는 참가하지 않고 안티오키아에 남아 그곳의 공작이 되었다. 보에몽은 안티오키아 공국을 예루살렘 왕국 이상의 대국으로 만들고자 했으나, [[1100년]]에 소아시아의 투르크족 지도자인 [[다니슈멘드]]에게 패배해 [[1103년]]까지 포로가 되었다.
 
그 사이 동로마 황제 [[알렉시오스 1세]] 콤네노스의 지원을 얻은 툴루즈 백작 [[레몽|레몽 드 생 질]]이 [[트리폴리스 백작령]]을 창설하고, [[안티오키아 공국]]의 확대를 저지했다. 그후그 후 [[1106년]] 프랑스 왕녀 콩스탄스([[필리프 1세]]의 장녀)와 결혼해, 동로마 제국과 다툼을 벌였으나, 결국 패배하고 그 종주권을 인정한 뒤 1111년 실의속에 죽었다. 아들인 [[보에몽 2세]]가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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