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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5년]] [[장경왕후 (조선)|장경왕후]]가 원자(훗날의 [[조선 인종|인종]])를 낳고 산후병으로 죽자 [[1517년]] 윤원로의 누나가 왕비로 간택되었다.
 
[[1537년]] 좌사어로 근무할 때 사돈인 [[희락당 김안로]](金安老)와 다투다가 파직, 유배되었다. 그뒤그 뒤 김안로가 [[문정왕후]]를 폐출하려다가 실패하자 관직에 복귀했다. 44년 윤임과 다투다가 파직·유배되었다.
 
중종이 죽고 1544년(인종 1년) [[조선 인종|인종]]이 즉위해 윤임의 대윤이 득세하자 탄핵을 받고 파직당했다.<ref name=autogenerated1>[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b17a2116a 윤원로 - Daum 백과사전<!-- 봇이 따온 제목 -->]</ref> 이후 그는 동생인 [[윤원형]], 조카 [[윤춘년]] 등과 짜고 [[윤임]]을 축출할 계획을 세운다.
그해 7월 앞서 다시 [[윤임]] 등 [[대윤]](大尹) 일파를 축출하려고 대윤 일파가 경원대군을 해치려 했다고 무고(誣告)했으나, 영의정 윤인경(尹仁鏡)과 좌의정 유관(柳灌)이 망언(妄言)을 조작하고 천친(天親)을 이간한다고 탄핵함으로써 [[전라남도]] [[해남]]으로 유배되었다가 1년 만에 풀려났다. 대윤의 [[윤임]]은 그와 9촌 숙질간이 된다.
 
그뒤그 뒤 [[을사사화]]로 [[윤임]], [[유관]](柳灌), [[유인숙]] 일파가 제거, 사사되자 석방됐다. 그뒤그 뒤 [[돈녕부]][[도정]]에 이르렀으나 공신에 참여하지 못한 것을 분하게 여기다가 [[1546년]] 동생 [[윤원형]]과의 정쟁에서 패하여 탄핵을 받아 파직 유배되고, 사사당하였다. 이 일로 그의 아들 [[윤백원]]은 윤원형의 정적인 [[이량]]과 결탁하게 되었다.
 
정적인 [[김안로]](金安老)와 사돈관계를 형성하기도 했다. 윤원로의 아들 [[윤백원]]은 [[조선 중종|중종]]의 딸 [[효혜공주]]와 연성위 [[김희 (조선)|김희]](延城尉 金禧 ? ~ [[1531년]])의 딸 김선옥(金善玉, [[1531년]] ~ ?)과 결혼했다. 며느리 김선옥은 [[김안로]]의 손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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