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일 2세 팔레올로고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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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네스 5세 팔라이올로고스]]의 아들로, [[1373년]] 형인 안드로니쿠스 4세가 아버지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키자 이듬해 후계자로 임명받았다. 그해 9월 공동 황제가 되었고 1379년 아버지를 도와 형 안드로니쿠스가 1376년에 장악한 [[콘스탄티노폴리스]]와 왕위를 다시 찾았는데 이때 [[오스만 투르크]]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술탄에게 조공을 바치고 군사원조를 해야 했다.
 
[[1390년]] 안드로니쿠스의 아들 요한네스 7세가 다시 콘스탄티노폴리스을 점령하고 왕위를 빼앗았으나 [[오스만 제국]]은 요한네스 5세와 마누엘을 도와 왕위를 되찾게 해주었다. 그뒤그 뒤 마누엘은 술탄 [[바예지드 1세]]의 신하로 그의 궁전에서 살다가 [[1391년]] 2월 아버지 요한네스 5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탈출해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돌아왔다.
 
[[1396년]] 투르크가 테살리아와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쳐들어오자 도움을 청하기 위해 서유럽으로 가서 2년 동안 파리에 머물렀다. 그의 방문은 비잔티움과 [[서유럽]] 사이의 문화 교류를 촉진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으나 군사원조는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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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3년]] 바예지드 1세의 후계자 [[메메드 1세]]와 평화 조약을 맺어 [[테살로니카]](지금의 [[그리스]] [[테살로니키]])를 되찾고 조공을 끊었다. 메메드가 죽은 1421년까지 비잔틴과 투르크 사이에는 평화가 유지되었고 마누엘은 종교와 문학에 심취하기 위해 국사(國事)에서 손을 떼었다.
그러나 메흐메드가 죽은 뒤 마누엘의 아들인 공동황제 [[요한네스 8세 팔라이올로고스]]는 두 나라 사이에 지속되던 미미한 유대관계를 무시하고 [[1421년]] 오스만 제국의 정통 후계자인 [[무라드 2세]]에 대항해 술탄위 요구자 무스타파를 지지했다.
무라드 2세는 무스타파가 이끄는 반란을 진압한 뒤 쳐들어와 [[1422년]] 콘스탄티노폴리스을 포위공격했으며 1423년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유린했다. 콘스탄티노폴리스는 함락당하지 않았으나 마누엘은 굴욕적인 조약에 서명해야 했으며 그뒤그 뒤 수도원으로 물러났다.
 
== 가계도 ==